‘맥스 달튼’의 시각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만나다.

기억 한편에 묻어두었던 영화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 영화와 함께 즐거운 추억 속으로 빠져 본다면 어떨까.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이 예술적 취향을 나눠본다면 어떨까. 이 모든 가정이 현실이 되는 ‘추억 보관소’ 같은 전시회가 있다. 바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이다. 그저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예술의 세계가 아닌 대중적인 영화와 작품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맥스 달튼의 개인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놓칠 수 없는 대규모 전시회라 할 수 있겠다.

‘맥스 달튼’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0년 동안 그의 손에서 재탄생한 영화를 모아본다면 하나의 ‘대중문화 역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이 전시회는 그의 작품을 통해 ‘영화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SF 영화부터 로맨스,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명작 영화를 그의 개성 있는 일러스트로 표현해냈다.

그중에서도 맥스 달튼을 대표하는 영화는 역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달콤하고 환상적인 ‘핑크빛’ 향연으로 물든 작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이 전시회의 대표 컬러도 ‘핑크’라고 할 수 있다. 포스터, 팸플릿, 그리고 전시회 곳곳에서 ‘핑크’는 포인트처럼 자리하고 있다. 전시회 장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강렬한 핑크색의 글씨를 마주하기도 한다.

‘핑크’는 전시회의 테마이기도 하지만, 맥스 달튼을 대표하는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첫 번째 이유는 맥스 달튼과 웨스 앤더슨의 특별한 인연이다. 맥스 달튼은 [로얄 테넌바움]을 시작으로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 빠져들며 그의 영화적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영화를 테마로 한 [배드 대드] 전시회에도 참여하며 인연을 이어나갔다.

추후 웨스 앤더슨의 명작으로 꼽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트북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하게 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아트북 [웨스 앤더슨 컬렉션]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아트북에선 웨스 앤더슨의 모든 영화를 ‘맥스 달튼’의 감성이 묻어나는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특별하다. 맥스 달튼의 작품을 생각하면 ‘파스텔 톤의 핑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결정적인 이유다.

‘핑크’는 그의 작품이 가진 분위기에서도 나온다. 로맨스, SF, 스릴러까지 그 장르가 무엇이든 마치 동화 같은 느낌의 화풍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렇다고 단순히 ‘아기자기’하다는 표현으로 끝낼 수 있는 그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 세계는 거대하다. 각 영화가 가진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도 ‘동화’같은 느낌의 그림체를 적절히 융화하며 구조적이다. 작품 안에 영화의 세계관이 들어있고 그 영화의 모든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식화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명장면을 하나씩 곱씹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새로움과 친숙함 사이에서 또 하나의 독특함을 주는 그의 감성은 ‘핑크색’처럼 낭만적이고 달콤하다.

층층이 쌓여 도식화된 그의 그림처럼 전시회 또한 깔끔하게 정돈돼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1부에서 5부까지, 총 다섯 가지의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챕터가 알차고 재미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전시는 ‘알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반가운 영화를 마주할 때마다 집에 가서 다시금 그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어 모든 관람객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 듯하다.

1부는 ‘우주적 상상력’을 제목으로 한다. 맥스 달튼은 SF 영화의 전성기를 직접 겪었던 사람으로서 ‘우주적 세계’를 다양한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 [에일리언], [월-E], [그래비티]까지 몇 십 년간의 우주 영화 역사를 그림으로 살펴볼 수 있다. [백 투 더 퓨처]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도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다.

2부는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부터 [아멜리에]처럼 로맨틱한 영화까지.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도 그야말로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이다.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 다수 있는 만큼, 그 장면의 명대사를 작품 위에 써놓기도 했다. 그림과 대사를 함께 보고 있자면 눈앞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잠시 전율이 오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도 전시되어 있어 앞으로 그의 예술 세계가 한국 영화까지 넓혀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3부는 시작부터 ‘핑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3부의 제목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탤지어’이다. 앞서 말했듯이 맥스 달튼을 대표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낭만적인 화풍을 극대화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특별하게도 4부와 5부에서는 그의 그림 속에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맥스 달튼’의 작품 세계가 그저 영화 안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에서는 그의 일러스트로 완성된 동화를 만나볼 수 있다. 더하여 한국 전시를 위해 최초로 선보이는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도 감상할 수 있다. 피카소, 프리다 칼로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업 방식을 현대적인 일러스트로 표현해낸 작품들이다.

마지막 5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추억과 향수의 정점을 찍는다.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과 같이 유명한 아티스트의 LP 커버를 재해석하여 그렸다. 그들의 앨범을 CD가 아닌 ‘LP’로 만나보면서 추억에 젖어들기도 하고,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핑크빛 예술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전시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추억 여행이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전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샵’이 펼쳐진다.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만 보이지는 않는다. 정말이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만한 고퀄리티의 굿즈가 한곳에 모여있다. 맥스 달튼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엽서와 액자, 노트, 스티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모든 작품을 ‘총정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맥스 달튼의 테마파크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된 상품을 구입하는 관람객들도 많이 보였다. 맥스 달튼의 작품을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구입할 수도 있으니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닐 듯하다.

공통적으로 전시를 보며 느낀 건 ‘추억’과 ‘공감’이었다. 여타 전시회와 다르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공존하고 있다. 함께 온 사람의 인생 영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같이 본 영화에 열광할 수도 있다. 평범한 대중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고, 예술계와 영화계의 팬들, 마니아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시회였다. 무엇보다 온전히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기회가 흔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가치 있는 순간이었다.

전시가 끝나고 나서도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순간. 예술의 연장선을 느낄 수 있는 순간. ‘영화’나 노래’와 같은 예술 작품은 추억을 함께 담고 있다. 우리가 그 작품을 처음 접했던 순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단순히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관람해도 좋을 듯하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7월 1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장세민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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