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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존재 증명, 영화 '걸(girl)'

발행일자 | 2021.01.04 09:05
영화 '걸(girl)' 포스터
<영화 '걸(girl)' 포스터>

영화 <크라잉 게임>에서처럼 <걸>에서도 성기가 노출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성기노출이 제시된 <크라잉 게임>과 달리 <걸>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한 성기은닉의 틈새에서 자신과 대면하는 성기노출이 묘사된다.

<크라잉 게임>의 성기노출은 극중 노출과 (관객을 겨냥한) 화면 노출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걸>에서는 극중 은닉과 화면 노출로 나뉘며, 화면 노출도 거울을 통한다. 남에게 보여줄 수 없고 자신만이 숨어서 바라봐야 하는 거울 속의 몸은 비애(悲哀) 그 자체이다.

영화 '걸(girl)' 스틸컷
<영화 '걸(girl)' 스틸컷>

영화에서 이웃집 소년과 ‘성적 사건’을 기도한 이후에 라라가 거울 앞에 선 장면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슬픔을 형상화한 듯하다. 남성 성기노출을 통해 이렇게 애잔한 정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사실에서,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역량을 느끼게 된다.

성기은닉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주로 여성의 성기를 대상으로 하며, 은닉과 노출 사이에 문화적이고 권력적인 절차와 게임, 혹은 폭력이 개입한다. 반면 라라의 극중 ‘성적 사건’에서 병행된 것과 같은 필사적인 성기은닉은, 여성이 행한 자신 몸의 남성 성기 은닉이란 역설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처한 맥락과 달리 라라의 성기은닉은 부재의 은닉이란 고통을 역설한다.

영화 '걸(girl)' 스틸컷
<영화 '걸(girl)' 스틸컷>

영화의 결론에 해당하는 라라의 선택은, 충격적이고 처참한 것이지만, 존재론의 측면에서 보면 처절한 실존의 확인이자 부재의 노출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한 은닉된 존재의 해방이다.

혹자는 고정된 성정체성을 강화한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존재를 이토록 열망한 모습을 이 영화처럼 설득력 있게 제안하기가 전혀 쉽지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대사 없이, 또 호들갑 떨지 않으며 잔잔하고 비교적 빠르게 진행한 마지막 부분의 감각이 좋았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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