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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웅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사람을 움직이는 섬세한 언어

발행일자 | 2020.11.11 00:00
길윤웅 IT전문 잡지 기자
<길윤웅 IT전문 잡지 기자>

고등학교 홍보 영상 제작을 최근 마쳤다.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이나 체육활동 모습을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웠다. 진로 진학에 관한 학생과 선생님 인터뷰 영상으로 편집을 하고 납품했다.  처음에 학교 담당 선생님이 본보기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그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가 생각한 금액과 제시한 예산 차이가 컸다.

학교에서 제시한 예산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정밀하게 작업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적인 학교 분위기를 움직임이 큰 영상으로 만들었다. 학교가 요청한 홍보영상 작업이지만 회사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도 될 만한 포트폴리오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을 풀었다.


편집 영상을 본 학교 구성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돈 생각하고 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요구 수준보다 좀 더 높게 작업했다. 작업자가 얼마나 세밀하게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서 일의 결과물은 달라진다. 최종 편집된 영상을 한 번 보고 끝내지 않고 다시 보고, 또다시 보면서 0.1 초의 빈틈을 찾아 부족한 부분을 고친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무섭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 일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고 사고가 나는 것은 돈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돈도 안 되는 일이라거나’, ‘노느니 한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더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얼마나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받는 것만큼 일하는 사람과 그 이상으로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상대가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신의 말만 다 하고 대화를 끝내는 사람이 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그렇게 자신의 답답한 사연만 쏟아내고 커피 타임을 끝내는 사람은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언어로 상대를 대하는지 늘 점검한다. 지나침은 없었는지, 혹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마무리한 것은 없는지를 살펴본다.

책을 통해 인생 지혜를 얻기도 하지만 가장 유효한 지혜는 사람을 통해서 나온다. 대화는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사람을 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는 삶의 수준이다. 살아온 환경은 언어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학력 수준이 언어의 수준과 똑같지 않다. 많이 배웠다고 좋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 청문회 생중계를 통해 국회의원의 언어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중계하는 현장에서도 그 정도면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떨까.

조용하고 논리적으로 설득보다는 폭력적이고 거친 언어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모습은 언제쯤 사라질까. 국민의 판단이 결국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면 투표는 소중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마찬가지다. 화가 난 상태에서 꺼내는 말은 거칠다. 마음의 안정이 이루어진 가운데 정리된 생각이 언어로 나올 때 상대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이번 일을 하면서 학교 담당자가 일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이 배웠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일이라 결재가 복잡할 텐데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구성원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잘 구분해줬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한 신문사 칼럼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최근 <공부란 무엇인가>를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가를 묻는가.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지만 제대로 된 공부를 위해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창의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안온한 환경에 자신을 머물게 하지 말고 험지로 떠날 것을 권고한다.

공부는 사람을 놓고 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 가운데 눈길을 끈 부분은 언어의 섬세함이다. 공격적인 언어 남발하지 말고, 섬세한 언어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해 준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거칠게 일반화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삶이 단순하지는 않다. 거친 안목과 언어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를 부수거나 난도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식의 거친 공부라면, 편견을 강화해줄 뿐, 편견을 교정해주지는 않는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

-84쪽,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길윤웅 yunung.kil@gmail.com 필자는 IT전문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한글과컴퓨터 인터넷 사업부를 거쳐 콘텐츠 제휴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진행 했다. 디자인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과 제작 활동에 관심을 갖고 산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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