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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세상밖에 자신을 던진 사람들,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발행일자 | 2020.11.09 10:45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스틸컷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스틸컷>

여기서 우리는 봉쇄라는 한국어에 대응하는 두 개의 큰 범주를 볼 수 있다.

'블로케이드(blockade, 봉쇄)'와 '엠바고(embargo, 통상 금지)'는 동적인 성격이 강하며 외부에서 가해지는 차단이다. '클로이스터(cloister, 수도원의 기둥회랑)'는 정적인 성격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며 내부에서 외부를 막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의 차이가 뚜렷하다. 전자는 외부에서 내부를 죽이려고 든다면 후자는 외부의 위해 요소를 막아내어 내부를 살리려고 한다.


이러한 차이는 도식적인 것으로 근본적인 차이는 자유와 관련한다. 전자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봉쇄라면 후자는 자유를 찾기 위한 봉쇄이다. 봉쇄함으로써 더 광활해지고 금지함으로써 더 자유하는 세계는 오직 종교와 신앙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다룬 내용을 자유를 향한 구도자의 멈춤 없는 정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스틸컷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스틸컷>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 안에서의 참 자유'는 기독교를 떠나 '진리 안에서의 참 자유', '노동계급 안에서의 참 자유'라고 하여도 확실히 상통하지만 '주 안에서의 참 자유'만이 주는 독특한 자유가 있음을 이 영화가 천명한다.

그것은 은혜와 은총의 경지로, 근본적으로 자유할 수 없는 ‘나’에게 자유함이란 선물을 허락하는 신비한 체험이다. 한두 평 좁은 방 안에서 갇힌 짐승처럼 맴돌아야 도달하는 각성이다.

어떻게 각성에 이르는지를 '카르투시오회' 헌장 4-1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주된 노력과 목표는 독방의 침묵과 고독에 투신하는 것이다"
"독방은 거룩한 땅이며, 주님과 그분의 종이 함께 이야기하는 곳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감동적인 영화이다.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제격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나은 극화가 불가능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카르투시오회’ 헌장 4-1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감동을 짐작할 수 있는 논거가 된다.
 
"지상은 천상과 결합되고, 신성은 인성에 결합된다"
"그 여정은 길고, 약속의 땅에 있는 샘에 도달하는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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