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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시체 치우는 남자들이 어쩌다 어린이집을 차렸나, 영화 '소리도없이'

발행일자 | 2020.10.12 09:10

‘소리도 없이’는 신인감독 홍의정의 패기와 창의가 넘쳐나는 영화이다. 영화의 통상적 소재인 범죄를 특별한 방식으로 소화하여 범죄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칭찬을 받아도 좋겠다.

이 영화는 비대칭, 역설, 반어를 기본값으로 취하면서 주변화와 상황화의 문법을 정색하지 않으며 보일 듯 말 듯 채색해 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소리도 없이' 유아인 포스터
<영화 '소리도 없이' 유아인 포스터>

태인(유아인)에게 윤리와 생존은 제로섬 관계이다. 선과 악 사이에는 홍의정 감독 말대로 구분선이 모호하다. 태인에게 제로섬게임으로 주어진 윤리와 생존 사이에 구분선이 분명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제로섬은 극중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태인이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수록 태인의 생존확률이 떨어진다.

따라서 태인에게 부여된 과제는 윤리학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바뀌게 된다. 태인과 창복(유재명)은 주변화한 존재이자 걸쳐진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주변화가 종종 우아한 걸쳐짐의 모습으로 표현된 반면 ‘소리도 없이’에서는 남루하고 슬픈 걸쳐짐으로 그려진다. 태인은 말을 못하고 창복은 다리를 전다. 태인이 말을 못 하는지 안 하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창복이 선천적 장애를 가졌는지 사고를 당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소리도 없이' 유재명 포스터
<영화 '소리도 없이' 유재명 포스터>

이러한 생략은 작품의 결을 더 풍성하게 하면서 열린 해석의 장을 만든다. 토끼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문승아는 관객을 이상한 나라로 순식간에 납치한다. 그가 연기한 유괴당한 어린이 초희가, 비주류 의식과 행태가 만연한 창복-태인과 달리 주류 마인드와 대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전복을 성취한다.

마지막에 태인이 용석의 재킷을 벗어 던지는 장면에서 영화는 주변화와 상황화에 관한 나름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 장면이 아마 존엄한 존재를 선언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모색되었을 것인데 존재론적 균형이 무너지고 일상의 활로가 사실상 차단된 상태에서 그 선언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느와르’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혹은 ‘블랑 느와르’?   

개봉 : 2020.10.15
상영시간 : 99분
감독: 홍의정
출연 :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
상영등급 : 15세 관람가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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