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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소녀, 장난전화, 드러난 공포의 민낯…영화 '공포분자'

발행일자 | 2020.09.14 09:30
영화 '공포분자' 포스터
<영화 '공포분자' 포스터>

<공포분자>는 대만 '뉴 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이다. 극영화를 다큐멘터리 정신에 접목한 뉴 웨이브라는 대만 영화의 새로운 시도는 수십 년 전 관객과 평단 등 영화계의 박수를 받았다.

이러한 일종의 '성찰적 리얼리즘'의 전통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더 박수를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영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은 성찰을 전면에 내세운 대중예술에 불편해한다. 지금 영화에서 소비와 성찰은 병립하기 힘든 두 개의 단어이다.

영화 '공포분자' 스틸컷
<영화 '공포분자' 스틸컷>

<공포분자>는 뉴 웨이브의 기수 고(故) 에드워드 양 감독이 198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인 <하나 그리고 둘>(2000년)은 '성찰' 자체를 보여준 그의 영화연출의 백미이다.

그럼에도 <하나 그리고 둘>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대중적 열광을 불러올 작품은 아니다.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을 잔잔하고 강한 성찰로 채우니 소수의 매니아층만 열광한다. <공포분자>는 마찬가지로 성찰을 담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는 작품일 수 있다. <공포분자>의 성찰은 전면적인 형식이 아니라 사건을 보여주면서 성찰을 후면에 배치하였기에 대중이 다가가기는 더 쉬워 보인다.

영화 '공포분자' 스틸컷
<영화 '공포분자' 스틸컷>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 <공포분자>에는 호감가는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중 최고 비호감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립중이겠다. 이립중이야말로 단연 ‘The Terrorizer’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최악의 ‘공포분자’이지만 홀로 최종적 비극을 자처한 이립중이란 혐오스러운 인물 말고는 이 영화에서 그나마 존엄한 인간을 찾을 수 없다는 역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역설을 어찌해야 할까.

연민 없는 공포가 만연한 세상에서 어떠한 카타르시스의 전망도 부재할 할 때 혐오스러운 삶과 자신의 인생을 예민하게 자각하고 세상과 최종적 단절을 결단한 이립중이야말로 가장 존엄한 방식으로 삶을 대면한 사람이란 판단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삶을 버렸을 때만 존엄한 삶이 가능하다는 비극적 성찰은 마지막 장면과 반전의 대미를 통해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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