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텍사스>는 간단한 스토리로 구성돼 있지만 묵직한 울림을 담았다. 로드무비이지만 로드무비 이상의 심오한 울림을 전하기에 로드무비다운 로드무비도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길 위에서 길을 찾기 마련이지만 길 위엔 찾는 길이 없는 사정과 흡사하다. 아무튼 인간이 길을 나서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파리텍사스>에 많은 얘깃거리가 있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트래비스와 제인의 재회장면이야말로 압권이다. 남편-아들에게서 떠나온 제인은 관음증(觀淫症)적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가끔 아들이 모르게 아들을 돌보는 월트의 아내에게 돈을 보낸다.

영화 속 관음(觀淫)적 유흥의 공간은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방에 여성 접대부와 손님이 들어가는데, 두 방 사이엔 커다란 통유리가 존재한다. 여성은 손님을 볼 수 없지만 손님은 여성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상대를 보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전화기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영화 '파리텍사스' 스틸컷
영화 '파리텍사스' 스틸컷

인지의 불균형은 들여다보이는 쪽의 여성을 발가벗겨놓은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반대쪽은 터럭 하나 노출되지 않는다. 들여다보는 쪽의 비가시성과 익명성은 매매춘의 핵심역량인 구매력과 결부되어 들여다보이는 쪽을 지배한다. 전화기로 진행되는 대화는 따라서 결코 소통이 될 수 없다. 불통은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에 다 해당한다. 들여다보이는 쪽이 들여다보는 쪽을 본원적 대화파트너로 삼을 수 없기에, 이 기이한 딜레마게임의 구조는 관음적인 허위의 판타지만 극대화할 뿐이다.

그러므로 트래비스가 제인을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 유리창 건너편을 보지 않고 등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은 비록 실패한 공존의 구조이지만 대화를 걸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의 표명이다. 또한 원래 설정과는 반대로 트래비스 방의 불을 켜고 제인 방의 불을 끔으로써 두 사람은 불통을 극복하려 하지만, 완전히 극복되지는 않는다.

이 구조에서 두 사람은 대면하여 만날 수 없을뿐더러 유리창을 통해서도 동시에 서로를 볼 수 없다. 이 공간의 구조야말로 이 영화의 메시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렵게 기도하는 공존에는 항상 일방적 인식과 오해가 따라다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공존을 위한 대화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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