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해체된 그룹... 팬덤은 존재한다

CJ ENM E&M 부문에서 운영하는 음악 전문 채널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투표 조작’이라는 이슈의 중심이 된지도 반년이 지났다. 네 번째 시즌이었던 ‘프로듀스 X101’을 통해 만들어진 보이 그룹 ‘X1(엑스원)’은 지난 1월 6일 갑작스러운 해체 발표와 함께 공중분해되었고 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엑스원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CJ ENM의 허민회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 불과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작 일주일 전에 대국민 사과를 통해 약속했던 내용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버린 셈이었다.

투표 조작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엑스원은 데뷔 초동 앨범 판매에 있어 ‘하프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음악방송 1위를 열한번 차지했으며 각종 온라인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엑스원을 응원하는 팬들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원잇(One-It)’이라는 팬덤명을 가진 ‘X1(엑스원)’의 팬들은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없이 일방적인 해체를 강행한 CJ ENM의 무책임함에 반기를 들었다.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의 세 가지 요구

설 연휴를 목전에 둔 1월 22일 엑스원의 팬들은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을 결성하고 상암동 CJ E&M 센터 정문 앞에서 집단 시위를 개최했다. 디시인사이드 엑스원 갤러리, 스윙 보이즈 갤러리, CJ보이그룹 갤러리, 트위터 엑스원 새 그룹 지지계, 엑스원 활동 지지계, 엑스원 총공 팀, 엑스원 음원 총공 팀, 엑스원 스밍 알림 팀, 엑스원 VOTE팀이 연합하고 WingsForX1, X1global, X1union, 엑스원 러시아 연합, 중국 엑스원 웨이보 연합, X1ONEIT 일본팀 등 해외 팬연합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차가운 겨울의 아스팔트 위에 군집한 것이다.

500여 명 남짓의 인원이 참여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참가 인원은 그 두 배 수인 1000여 명에 육박했다. 연합의 이번 오프라인 활동을 준비해 온 운영진들도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것에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위는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의 촉구문 전문이다. 이미 없어진 그룹이기에 원잇이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팬들은 그룹의 해체에 따른 책임과 보상 및 새 그룹 결성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투표 조작 논란의 중심에 CJ ENM이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반성이나 자숙의 시간 따위는 없어 보인다.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의 촉구문에도 나와 있지만 엠넷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론칭하고 케이콘(KCON)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 세계 K-POP 팬들에게도 이와 같은 CJ ENM의 이중적인 행보는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비치고 있는 중이다.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은 CJ ENM 측으로 1월 31일까지 ‘엑스원 새 그룹 결성’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오는 2월 7일 이내에 각 엑스원 멤버들의 소속사 대표단 재회동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예의 주시해야 할 CJ ENM의 이후 태도. 팬들의 영향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

보이 그룹 엑스원의 팬들이 주축을 이루어 진행된 이번 연합의 단체 행동에 대해 CJ ENM은 책임감을 느끼며 향후에도 엑스원 멤버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12월 30일의 사과문처럼 지금의 이슈를 당장 잠재우기 위한 빈 껍데기와 다를 바 없는 발언이기에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엑스원 새 그룹 지지 팬 연합의 22일 시위는 설치될 예정으로 알려졌던 경찰 저지선인 ‘폴리스라인(police line)도 필요치 않을 만큼 순차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CJ ENM의 책임감 있는 태도와 이미 약속했던 것들의 정상적인 이행뿐이다.

전에 없었던 K-POP 팬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이번 시위와 관련된 CJ ENM과 엑스원 멤버들이 속해있는 소속사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시각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POP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그것을 소비하는 팬들을 ‘빠순이’라는 저급한 용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모순이지 않은가 싶다. K-POP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소비자인 팬들을 ‘팬 슈머(fansumer)’로 인정하는 자성이 필요할 것이다.

팬들 역시도 더 이상 폄하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갑을 열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K-POP을 소비하는 주체로서 팬 슈머의 역할을 실제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갑을 열지 말아라. 그래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넥스트데일리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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