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이 진행된 세종대학교 대양홀의 외관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이 진행된 세종대학교 대양홀의 외관

◆ 동시대 가장 핫한 반백 살의 진짜 어른

1990년 11월 데뷔 앨범 ‘겨울 나그네’를 통해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던 양준일은 다음 해인 1991년 3월 타이틀곡 ‘리베카’로 TV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 2020년 새해가 밝았으니 앞의 이야기는 무려 30년이나 지난 아주 옛날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해가 바뀌어 69년생인 양준일은 이제 만으로도 50세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2년 개봉작이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 세 번째 시즌을 통해 어렵사리 모습을 드러낸 양준일은 2015년부터 방영된 해당 프로그램의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슈가맨’에 가깝다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슈가맨’ 방송 이후 JTBC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에서 양준일의 이야기가 주제로 다뤄졌고 지난 크리스마스 날에는 직접 뉴스룸에 출연하여 JTBC의 사장이자 뉴스룸의 앵커인 손석희와 인터뷰를 가져 화제가 되었다. 특히나 양준일과의 인터뷰가 손석희의 마지막 문화초대석이라는 사실이 그 의미를 더했다.

이에 세간에서는 양준일의 인기를 시샘하거나 그 인기에 편승하고자 안티 성향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안티 팬도 팬이다.’라는 말처럼 양준일의 행보에 어마어마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준일이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들의 곁에 돌아온 것은 안티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개 방송 관계자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V 방송에서 양준일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던 이유는 대중들에게 이미 그의 과거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양준일의 인기를 증명해 준 2019년 마지막 날의 팬미팅

하루가 멀다 하고 스타를 꿈꾸며 데뷔를 하는 연예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적 대 스타가 양성한다는 후배들도 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기획사에서 배출하는 신인들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중들에게 선을 보여도 예전과 같은 범국민적인 인기를 쟁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최근 업계의 정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백 살 양준일의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성은 연예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이 진행된 세종대학교 대양홀의 내부 모습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이 진행된 세종대학교 대양홀의 내부 모습

2019년의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에 양준일의 팬미팅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얼마나 많은 팬들이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었다.

그 궁금증은 2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티켓 예매 오픈과 함께 사라졌고 팬미팅 당일 행사가 열리는 세종대학교 대양홀 앞을 가득 메우다시피하는 팬들의 길고 긴 행렬을 보며 눈 녹듯 녹아버렸다.

주요 지하철 역사에 수백만 원이 넘는 옥외 광고며 와이드 컬러 광고들이 양준일을 응원하는 팬들로 인해 설치되었고 여느 아이돌 인기에 못지않은 그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양준일의 광고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 모두 예전 활동 당시의 자료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선물처럼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양준일이기에 팬미팅의 타이틀 또한 ‘양준일의 선물’이었고 그의 선함을 뒤좇는 팬들이 많아서인지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서나 봄직한 자발적인 나눔을 하는 이들도 다수였다.

◆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된 ‘양준일의 선물’과 팬들의 선물

양준일의 팬미팅 일정이 확정된 것은 지난 12월 17일 무렵이었고 티켓 오픈은 20일이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 준비 기간이 무척이나 촉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팬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기간 역시도 동일했을 터다.

팬미팅 장소였던 세종대학교의 정문 앞에 허접해 보이는 스티커를 붙여 판매하던 비공식 굿즈(기념품)들도 겨우 열흘 남짓한 시간 안에 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팬들이 ‘양준일의 선물’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과 무상으로 나눔 하던 물품들은 더더욱이나 놀라운 것들이었다.

대양홀의 외부에는 팬 커뮤니티에서 준비한 커피차가 있었고 실내에는 양준일의 모습들을 실물크기로 제작하여 전시해 놓은 등신대와 쌀 화환, 겨란(양준일이 예능에서 계란을 겨란으로 발음했다.) 화환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슬로건과 싸인 엽서, 포토카드, 도무송 스티커 등등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들 준비하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준비된 굿즈들을 현장에서 나눔 하는 팬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팬들이 마련한 양준일 등신대 / 양쪽에 위치한 만화가 백홍시의 일러스트 등신대가 눈에 띈다
팬들이 마련한 양준일 등신대 / 양쪽에 위치한 만화가 백홍시의 일러스트 등신대가 눈에 띈다

양준일의 예전 모습이나 최근 모습의 자료를 단순히 인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에 가까운 전시물과 나눔 굿즈도 있었다. 만화가 백홍시의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양준일 등신대 2개가 눈에 띄었고 독특한 필체로 직접 제작했다는 캘리그래피 작가 이혜숙의 핀 버튼 나눔이 인상적이었다.

양준일의 오랜 팬임을 자처하며 현장에서 직접 자신이 만들어 온 4종의 핀 버튼을 나눔 하던 이혜숙 작가와 짧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데뷔 당시의 양준일을 회상하며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들을 온라인 영상 공유 서비스의 디지털을 통해 상기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수줍게 말을 이어갔다.

양준일의 오랜 팬 이혜숙 캘리그래피 작가가 직접 만든 핀 버튼 4종
양준일의 오랜 팬 이혜숙 캘리그래피 작가가 직접 만든 핀 버튼 4종

이혜숙 작가는 양준일의 활동 당시 많이 어렸고 어떻게 팬심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며 선물처럼 돌아온 양준일에게 이제라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밤을 지새우며 양준일의 기록들을 무한 반복하고 그의 노래들을 들으며 한 글자씩 정성을 들여 써냈다는 그녀의 핀 버튼은 획일적이지 않아 자유로운 그와 닮은 듯해 공식 굿즈로 판매해도 손색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 선물처럼 돌아온 양준일을 맞이함에 있어 우리가 짚어봐야 하는 것

그동안 음원 차트의 역주행은 때때로 있어왔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이렇게까지 재조명을 받게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 누가 시켜서도 아닌 대중들 스스로가 양준일이라는 아티스트의 예전 기록들을 접했고 그의 노래와 퍼포먼스에 자극을 받아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마치 전염병처럼 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아주 예전의 콘텐츠였기에 상업적일 것도 인위적일 것도 없었던 것이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었을까 한다.

진행을 맡은 김이나 작사가와 이야기 나누는 양준일
진행을 맡은 김이나 작사가와 이야기 나누는 양준일

3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선물 같은 양준일은 연륜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20세기의 순수하고 꾸밈없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삶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자세가 그러하였고 지금의 인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솔직한 태도로 겸허하게 토로하는 그의 말들이 그러하였다.

다시 만난 양준일이 한없이 반갑고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 우려되는 한 가지는 여전히 30년 전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그가 또다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팬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할애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하고 싶다 말하는 양준일이기에 이미 그에게서 돈 냄새를 맡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많은 이들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2월 31일의 팬미팅 날. 그의 퇴근길을 보기 위해 기다렸던 많은 팬들을 위해 차에서 내려 포즈를 취해주는 팬 바보인 양준일이기에 앞으로의 시간들이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고스란히 보상받기만 하는 것들로 채워지기를 바라본다.

3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돌아 받게 된 양준일이라는 ‘선물’에 보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될 필요가 있겠다.

넥스트데일리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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