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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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 조작 사건에 대한 CJ ENM의 태도

지난 18일 서울 목동에 위치한 방송회관에서는 CJ ENM E&M 부문에서 운영하는 음악 전문 채널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101’ 방송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었다.

투표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인 안PD와 김CP가 구속 기소되어 있고 보조PD와 기획사 임직원 등 6명이 불구속 기소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이기에 방송이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방송심의규정인 객관성 조항에 대한 심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Mnet의 콘텐츠 운영전략팀장인 강씨가 의견 진술자로 출석하였으나 방송 심의 위원들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정확하게 답변하지 않았고 심의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보류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net에 추가자료를 요청한 상태로 심의가 가능한 자료의 확보 여부에 따라 심의 재개 여부가 논의될 수 있다고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2016년부터 시작되었던 프로그램의 네 번째 시즌에 대한 제작진들과 회사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는데 콘텐츠 운영전략팀장이라는 이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자리에 의견 진술자로서 나왔다는 것은 해당 방송에 대한 대표자의 자격으로 나왔다는 것이고 Mnet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여야만 하는데 심의를 위한 모든 질문에 잘 알지 못한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는 것은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투표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재판 역시도 개인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 묻는 공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기에 남은 사람들과 회사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못내 꺼림칙하다.

■ 프로듀스 시리즈 출연자들에 대해 형평성을 가지지 못하는 대중들의 시각

검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표 조작이 이루어진 것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전 시즌 모두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활동이 종료된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즌의 출연자들은 아무 영향 없이 종전과 같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중이고 아직 활동이 끝나지 않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시즌의 출연자들은 공인으로서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어 있는 상태다.

네 개의 시즌에 출연했던 출연자들 모두가 투표 조작 사건의 피해자이고 개개인이 해당 사건에 가담한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전 시즌의 출연자들은 모두 동일한 처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듀스 시리즈 데뷔 멤버로서의 활동이 종료된 출연자들은 각각의 소속사로 돌아가 그룹 활동을 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멤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에 대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룹 활동이 아닌 솔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출연자로 활동하면서 붙여진 별칭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당시 이슈가 되었던 일들을 거론하며 새로운 앨범에 대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고 대중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아직 활동이 종료되지 않은 세 번째 시즌의 데뷔 그룹 ‘아이즈원’과 네 번째 시즌의 데뷔 그룹 ‘엑스원’에 대해서는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포스터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포스터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을 통해 각 시즌별 데뷔 그룹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하나같이 ‘조작’이나 ‘조작 멤버’ 등의 연관검색어가 나타나고 있는데 앞의 두 시즌과 뒤의 두 시즌에 다른 점이 있다면 앞의 시즌의 경우 ‘재결합’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나오지만 뒤의 시즌의 경우에는 ‘해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 그에 대한 반증이다.

투표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난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여 활동했었던 출연자들과 활동 중인 출연자들이라는 사실 외에는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어찌하여 형평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 투표 조작 사태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 회피

투표 조작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지 않고 표면적인 것들에만 집중한다면 자칫 용두사미(龍頭蛇尾)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수년간 거듭되어 온 방송계의 관행에 대해 일부의 개인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저 작금의 상황을 무마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거짓 방송으로 국민들을 우롱한 사건인 만큼 문제의 중심에 있는 더 큰 책임 소재를 밝혀내어 향후에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뿌리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

일부 제작진과 관계자가 마음대로 투표를 조작했다는 식의 결론은 말도 되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몇 개의 시즌이 지나는 동안 어마어마한 금전적인 거래와 수익창출이 있었던 프로그램인데 열 명도 되지 않는 개개인의 결정으로 좌지우지되었을 리가 없다.

회사가 일개 직원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었을 리 만무하고 적게는 몇 십억, 많게는 몇 천억에 달하는 프로그램과 연관된 수많은 비즈니스의 상관관계를 회사에서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논란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지려하는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에만 급급한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다.

투표 조작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출연자들의 공식 일정을 취소시키는 것으로 사과를 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만든 주체인 방송사에 제동을 걸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프로그램들의 편성을 취소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회사는 투표 조작 사건에 대해 세간이 떠들썩했던 시기에 비슷한 부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투표로 선발하는 방식이지만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지 않음으로 조작을 방지했다는 말은 내부의 문제에 대해 개선할 생각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헛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전 세계 K-POP 팬들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뜨려 놓고 해외에서 대규모의 시상식을 거행한 것도 팬들을 우습게 보는 처사와 다르지 않았다. 투표 조작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질 요량이었다면 시상식 자체를 취소했어야 했다. 아니 취소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시국에 굳이 그 나라에 가서 시상식을 치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 남아있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사태의 주체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경각심 없이 엉뚱한 소녀와 소년들을 희생양으로 앞세워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걸 그룹 ‘아이즈원’의 근황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보이 그룹 ‘엑스원’ 멤버들의 목격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온라인을 통해 인증 사진과 함께 올려지는 추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당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출연자들 일부를 번화가에 출몰시킨다던 카더라 통신이 떠오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른들이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터다.

해당 프로그램과 연관되어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을 테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가짜인 프로그램 안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쳤던 출연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쓰고 자신의 일인 양 지갑을 열었던 팬들이 아닐까 한다.

기존에 계획되어 있던 출연자들의 공식적인 활동을 모두 취소시킨 회사는 소녀와 소년들과의 계약 내용을 어떻게 이행할는지 궁금하고 그들의 꿈이 보류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은 또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고 싶다.

아울러 조작된 유료 투표에 대한 보상과 함께 팬들의 구매를 통해 창출된 수익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상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즈원’의 경우 컴백 예정이었던 앨범의 예약판매 숫자만 10만 장이 넘고 ‘엑스원’의 경우에는 신인 최초 ‘하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데에 이어 데뷔 앨범 총 판매량이 57만 장을 넘었다.

특히나 가장 최근 시즌의 데뷔 그룹인 ‘엑스원’은 지난 7월에 유료로 모집한 공식 팬클럽에 대한 키트(아이돌 팬클럽 가입에 따른 기념 굿즈 세트)의 배송이 이제서야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투표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엑스원’의 공식 팬클럽 가입자들 중 일부가 환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일언반구(一言半句) 없이 진행되고 있어 이러한 팬들의 금전적인 피해에 대해 회사가 그 보상을 고민하고 있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관련하여 지난 15일에는 ‘엑스원 팬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엑스원 그룹 관련 입장 표명 촉구문’도 나왔다. 그 내용은 그룹의 향후 계획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와 투표 조작 논란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팬들의 지갑과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축적된 부의 가치가 적다할 수 없기에 촉구문에 대한 요구는 정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계속적으로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투표 조작 사건의 책임을 일개 제작진에게 떠넘긴다면 지금과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반복되다가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힐 무렵 유야무야되어버릴 것이 뻔하다.

재판은 재판대로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회사는 회사대로 기업윤리에 준하는 사회적인 반성과 책임 있는 태도로 투표 조작 사건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넥스트데일리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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