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외국에 오래 살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경우 외국에서 학교만 다니면 저절로 영어 실력이 는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3년전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시점에 우리 아이들의 언어실력은 한국어도 영어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글을 겨우 읽고 쓰며 ABC송은 부르지만 알파벳도 모르고 왔으니 말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날 즈음 영어 학습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무리해서 먼저 가르칠 필요 없다, 영국에서 학교 다니면 저절로 영어는 알게 되니 걱정말라며 열이면 열 영어로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놓여진 우리를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다.

첫 칼럼에서 언급했던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독자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등교 첫날 아이의 주머니에 ‘Water’와 ‘Toilet’을 적은 쪽지를 넣어주며 물 마시고 싶으면 오른쪽 종이를,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왼쪽 종이를 들어서 보여주라며 주머니에 넣어주고는 하교 때까지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축축하고 꼬깃꼬깃해진 메모지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메였는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 정도로 아이들도, 나도 영어로 말하기에 대한 준비가 안됐었다.

그럼 그 아이들은 3년이 넘게 지난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참고로 우리 아이들은 그 누구도 영재 혹은 조기교육, 선행학습과는 먼,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다.

세 아이들 중 한국어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4살난 막내아이다. 혼자 유튜브로 호기심 딱지, 엄마 까투리, 피 사 총사같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본인이 피가 나거나 아프면 혈소판과 혈장 힘내라, 백혈구 적혈구가 싸우고 있다는 놀라운 단어 선택으로 우리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은 경험이 있다. 그땐 막둥이가 천재인줄 알았다. 후에 피사총사라는 캐릭터를 알고 아이에게 무관심했던 내가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연습이 완벽함을 만든다. British council website참조
연습이 완벽함을 만든다. British council website참조

첫째와 둘째의 영어는 나쁘지 않다. 알아듣고 이해하고 답변할 수 있는 수준이며 둘째의 경우 아이의 발음과 언어수준이 영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와 비슷하다며 과외 수업을 받은 후 선생님에게 더는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당한(?) 적도 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영국에서 3년 넘게 살았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었으며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때문에 더 빨리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정말 학교만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생각될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자마자 우리 아이들은 영어 개인과외를 시작했다. 필자의 경우 정말 다행이었던 부분이 영국 현지학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선생님에게 아이들의 개인교습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학교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과외를 하고 과외 숙제를 하느라 일년 동안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한국에서 누군가가 자녀를 영국에서 학교에 보낼 생각으로 묻는다면 난 무조건 영어공부를 시키고 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기본적인 단어와 Phonics는 알고 와야 한다. CBBC나 CBeebies같은 영국 아이들이 보는 티비 프로그램도 미리 시청해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영국의 만화 캐릭터와 친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넷플릭스에서도 검색 가능한 프로그램이 많으니 그런 것을 검색해보는 것도 좋겠다.

Oxford의 Reading tree에 나온 Book band. 영국 학교에서도 옥스포드 리딩트리는 추천한다. 북밴드에 따라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처: Oxfordowl.co.uk
Oxford의 Reading tree에 나온 Book band. 영국 학교에서도 옥스포드 리딩트리는 추천한다. 북밴드에 따라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처: Oxfordowl.co.uk

영국에 산다고 무조건 영어가 느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영어를 한마디도 안하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인터넷에서 한국TV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 딱히 외로운 줄 모르고 살 수도 있다.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거나 사시는 분들은 공감할 것으로 본다. 영국에 산지 10년이 넘어도 외국인들을 보면 여전히 움츠러드는 그 느낌 말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선, 아이들 학교 등하교 길에서 만나는 외국 학부모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아이들은 매일 가야 하는 학교에서 외계어를 듣고 말도 못하는 자기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까. 그러니 아이들에게 왜 영어가 안느느냐, 아직도 안들리느냐를 확인하기보다 오늘 학교에선 행복했는지,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주기를 부탁 드린다. 아무도 내편이 아닌 것 같은 그 상황에서 엄마가, 아빠가 나의 안부를 묻고 확인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에게는 영국 생활의 또 다른 기쁨일 수 있지 않을까.

박지현 stephanie.jh@gmail.com 세 아이의 엄마이자 마이크로소프트와 렉트라 코리아의 열정적인 마케터로 일했던 워킹맘으로 현재는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좌충우돌 상황에서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고, 영국에서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위해 늘 노력하고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