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서 독서 이벤트를 했다. 50권의 책을 선정, 제목을 알 수 없게 포장한 후에 책에 관한 키워드를 꼬리표에 적고 도서관 이용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권을 집었다.

내가 선택한 책 꼬리표에는 ’하는 일마다 힘들다고 생각될 때‘라는 문장과 함께 “어른이 된다는 것, 안드로메다, 현실, 진짜 인생, 성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무슨 책일까? 꼼꼼하게 싼 책 포장지를 뜯었다.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안드로메다 횡단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이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안 된 걸까. 아니면 좀 더 진정한 어른으로 살기 위해 이 책이 필요한 걸까. 다소 황당한 첫 느낌이 지난 후 그래, 뭔가 마음에 닿는 이야기가 있겠지. 독서를 시작했다.

두 명의 저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린 시절 열광했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와 메텔의 여행을 바탕으로 인생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저자는 자신들의 현실이 삶과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의 삶을 교차시킨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주제가가 귓가에 맴돈다.

기차, 여행, 인생, 선택, 행복, 모험, 불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적혀 있는 ‘인생 카드’를 뒤집어 본다. 부딪히고 넘어져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게 쉽나. 저자는 충동적 사고와 민폐도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 말라고 한다. ‘사람은 쓸모만으로 재단되고 판단되고 결정되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니까.’

일하면서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충족하지 못하면서도 일을 할 때는 쉬운 일도 힘들게 느껴진다. 제작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빨리 달라고 재촉한다. 품질은 비용 이상을 요구한다. 안 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도 들지만 못 하겠다는 말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의 가격은 깎자고 하지 못하면서 사람의 일은 저렴한 비용에 높은 품질을 기대한다.

늘 하던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즐겁다. 도전은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은 피로 해소의 시간이다.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가는 삶은 호기심에 달렸다. 여행은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복잡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할 때 기차를 탄다. 늘 내가 있던 공간이 아닌 낯선 도시는 새로운 기운을 전한다.

바람이 색다른 계절, 9월을 넘기며 서울도서관에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결실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간, 결실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을 건다. 이미 우리 자신이 결실이기 때문이다. 뭘 해놓은 게 있나 싶은 생각에 처진 어깨를 올려준다.

앞면만 보고 살았다. 뒷면은 무엇이 돼도 상관없는 것처럼 살았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며 살자. 그렇게 보면 나쁜 일도 쓸모없는 일이 아니다. 모두 삶의 양분이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만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작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온다.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이 서로 섞였다. 모르고 살아도 불편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야 속이 풀린다. 호기심은 좋지만 남의 생활까지도 불편하게 만들면서 파고들 이유가 없다.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호기심을 갖고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호기심을 드러내야 할 순간과 말아야 할 순간이 언제인가’ 일 것이다. 그것만 알아도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진다.”

-228쪽, <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길윤웅 yunung.kil@gmail.com 필자는 IT전문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한글과컴퓨터 인터넷 사업부를 거쳐 콘텐츠 제휴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진행 했다. 디자인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과 제작 활동에 관심을 갖고 산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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