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으니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하라’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남긴 일이 있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엘리트로서 자신의 성공신화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주기 위한 선한 의도였으리라 생각하지만 시대착오적인 그 발언은 존경심을 거둬들이기에 충분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시대를 맞아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고 조언해줄 존경받는 기업인, 말과 행동이 균형 잡힌 원칙주의자는 어디 없을까?

은퇴한 헤지펀드의 대부라는 수식어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으나, 다음 세대들을 위해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칙을 전수시켜주려는 진실한 인물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얼마 전에 끝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입한 책 속에 길이 있었다. 선명한 대문자 제목 ‘PRINCIPLES’와 묵직하고 은은하게 새겨진 저자 이름 ‘RAY DALIO’ 아래에 작은 글씨로 ‘원칙’이라는 한글 제목이 작고 겸손하게 느껴지는 표지는 멋졌다. 칠순의 ‘레이 달리오’는 자신만의 원칙과 조직의 원칙을 통해서 많은 성과를 이룬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위대한 기업가다.

“나는 인생의 원칙과 일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가장 최근 투쟁은 내가 가진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후대에 전수하려는 노력이다. 때문에 나의 원칙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또한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경제의 원칙과 투자의 원칙을 후대에 전해줄 수 있어서 만족감을 느낀다.” - 697쪽

1949년, 재즈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롱아일랜드의 중산층 동네에서 자란 레이는 유전적인 것과 환경적인 면에서 자신의 장단점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며 글을 연다. 낙관적이고 꿈 많은 소년은 12살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하며 경제 활동을 시작했고, 헨리 소로의 글귀를 고교 졸업 앨범에 새겨 넣는 것으로 독립적인 사고를 증명했다. ‘친구가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못하면 아마도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리거나, 느리더라도 그가 듣는 음악 소리에 발을 맞추어라’는 그 멋진 신념은 평생을 간다.

대학에서 재무관련 과목만 집중해서 공부하고 그 성적으로 1971년 봄 하버드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레이는 금본위제 폐지와 주식시장 급등의 시대에 월스트리트를 경험한다. 1973년 오일쇼크에 이어 연방준비제도가 통화긴축을 추진하면서 최악의 주가 폭락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찾아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퇴진하는 등 격동의 시대 뉴욕 한복판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을 지켜본 것은 운명이었을까? 그 와중에 레이는 친구가 소개해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쿠바 출신 여학생 바버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나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식은 개인의 인생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해 내가 배운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여러분이 성공하도록 돕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아니면 적어도 여러분이 쏟아 부은 하나하나의 노력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도이다.” - 178쪽

닉슨 대통령 시절을 통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할 때 거기에 승부를 거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깨우친 것은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다. 최고 수준의 연봉으로 증권회사에 취직해서 그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길지 않은 직장 생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1975년,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를 창업한 레이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1977년 2년 동안의 열애 끝에 바버라와 결혼했고, 1979년에 아빠가 되었으며 일터와 직장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며 명쾌한 분석과 정확한 예측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8년 오일쇼크 이후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은 가격의 급등락이 있었다. 레이는 1981년의 불황과 멕시코 국가채무 불이행을 예측하는 성과를 통해 경제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오만에 빠진 젊은 사업가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패의 경험이 없는 그가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1982년의 예측에 실패하고, 거듭된 헛발질은 몰락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는 더욱 강해진다. 레이는 그 실패에서 자신의 성공에 필요한 방법들을 고민했고, 그렇게 정리한 네 가지 방법으로 원칙의 기틀을 마련했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고, 한계를 넘게 되면 실패라는 큰 고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이때 당신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고통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기회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실패가 가져다주는 교훈을 간직하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겸손함과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꾸준하게 그 방식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 66쪽

위대한 사람들은 현명하게 실패한 사람들이다. 현명하게 실패한다는 것은 실패를 통해 변화하고 다시 도전하여 결국 성공하고 만다는 것이다. 레이는 한 번 제대로 망한 뒤에 사고방식을 바꿨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안다’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로 바꾼 것이 주효했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반대 의견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훌륭하게 보이는 것보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꾸준히 도전하고 학습하고 변화하는 자세를 갖춘 것이다.

레이는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책과 지난 신문을 찾아 당시 발생했던 일과 현재 일어나는 일을 분석해서 미래를 진단하는 노하우를 축적시켜 나갔다. 자신이 실패하고 바로잡아가는 과정을 통해 만든 그의 원칙은 200가지가 넘는 세부적인 항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원대한 목표→(실패→원칙배우기→변화)→더 원대한 목표’라는 순환 고리(looping)가 바로 그것이다. 시대와 분야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레이는 회사 창립 30주년이 되던 2005년부터 자신이 직접 작성한 ‘원칙’라는 제목의 자필 안내서를 직원들에게 배포하고 필독을 권했다. 원대한 목표가 성공하면 더 원대한 목표로 곧장 나아가지만 만약 실패하면 원칙을 배우고, 변화하여 다시 도전하도록 격려했다. 또 다른 중요한 축은 투명성과 진실이다. 극단적으로 열린 생각을 갖고, 극단적으로 투명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직한 갈등을 유발시키는 개방적인 사고와 결과에 집중하는 생산적인 토론! 일개 직원들도 최고경영자인 레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기업문화는 짜릿하다.

“ABC와 오늘 회의에서 레이 당신의 성적은 D-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오늘 회의는 실망스러웠다. 1) 동일한 주제를 다뤘던 이전 회의에서 당신은 훌륭했다. 2)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는 2시간으로 제한된 회의에서 당신에게 문화와 포트폴리오 구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투자 과정을 담당했고, 그레그는 참관인 자격이었고, 렌달은 실행 계획을 담당했다. 내가 측정해보니 당신은 총 62분 동안 이야기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구성이라고 생각되는 주제에 대해 무려 50분 동안 두서없이 설명한 후 나머지 12분 동안만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이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 471쪽, 한 젊은 직원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철저함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집요하게 학습하고 접목하고 실패하고 다시 학습하고 다시 접목하여 실패를 줄여나가는 경영의 과학화가 경쟁력이라 판단했다. 불확실한 것은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인사 관리에도 마찬가지였다. 야구광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야구카드를 활용했다. 직원 개개의 장단점을 데이터 기반으로 철저하게 평가하고, 서로 간에도 평가하게 하는 극단적 불편함을 결국에는 정착시켰다. 마치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나가는 팀처럼 강력한 조직을 갖췄다.

최고의 팀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자는 것이지 다함께 공평하게 잘해보자는 뜨뜻미지근한 것은 결코 아니다.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은 당사자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종종 조직의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친다는 점도 강조했다. 모든 리더는 목표 달성을 위해 ‘착한지만 무능한 사람’을 해고 시키거나 함께하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브리지워터의 원칙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담한 목표를 가진 레이의 독립적인 사고로부터 시작되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순환 고리는 문제를 발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게 개인의 독립적인 사고에서 조직의 사고로 발전해 브리지워터를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복종이 아닌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다. 개인의 역사나 조직의 역사는 습관처럼 반복된다. 레이는 실패와 학습과 변화와 성공의 과정들을 꾸준히 기록하는 과정 속에서 원칙을 완성시켰다. 이 원칙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소프트웨어로, 앱으로 개발되고 능률을 향상시켜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위대해지려면 타협할 수 없는 것과 절충해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지지 않으려고 타협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것은 거꾸로 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낳는다. 안락함을 성공보다 앞세우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이 위해대지도록 강요한다. 나는 그들도 나에게 똑같이 해주기를 바란다.” - 407쪽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 ‘나의 인생 여정’은 그 자체로 회고록이다. 제2부 ‘인생의 원칙’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안내서이고, 제3부 ‘일의 원칙’은 지속 가능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방법에 관한 매뉴얼이다. 모든 내용이 특정 독자의 눈높이에 고정될 수 없는 방대한 시선을 담고 있다. 현명한 독자라면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읽어야 한다. 기업경영에 뜻이 없다면 3부를 생략하고 읽는 것도 괜찮다는 말이다. 다만 모든 책이 그렇듯 자신에게 유리한 글만 섭취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용도로 원칙의 일부를 왜곡시키는 것만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엄격한 사랑의 강조, 문제의 원인과 진짜 문제의 구분, 탁월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갈등 권장, 업무에 적합한 사람보다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라는 고용 원칙들을 읽다보면 깨달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40여 년 기업경영의 비밀과 70년간 행복했던 인생의 치밀한 속내가 더 이상 훌륭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GPS를 따라가다 다리 아래로 추락한다면 그것은 GPS가 아닌 운전자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치 GPS와 같은 이 책에 수록된 212가지의 원칙을 제대로 응용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몫이다.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놀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보통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비논리적이거나 오만한 것이 아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 당신이나 통찰력 있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옳다고 믿는 것이 비논리적이다. 당신은 노력을 통해 평균 이상의 자리에 올랐고,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600쪽

이 책은 아내 바버라에게 헌정된 책이다. 위대한 기업인이기에 앞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네 자녀의 아버지이자 귀여운 꼬마들의 할아버지로 행복한 남자의 인생이다. 끝까지 비밀로 유지하고자 했던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은퇴와 동시에 공유하기로 결정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준다는 순환 고리의 원칙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단순화시켜 줬다. 돈의 유일한 목적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것임을 잊지 말라며, 배려와 관대함을 기반으로 훌륭한 관계에 더 집중하라는 조언도 훌륭했다.

융통성 있다는 평가를 들으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성찰한다. 원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낭만이나 자유로 포장될 수 있겠지만 훌륭한 삶으로 이어질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삶의 철학과 타고난 성품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핵심적인 원칙부터 만들고 강화시켜 나갈 것을 결심했다. 영문판 서문에 무려 71회나 언급되는 ‘Principles’는 한국어판에서 대명사까지 풀어 모두 90개의 ‘원칙’이라는 낱말로 채워진다. 서문과 본문 사이에 굵은 글씨로 세 가지 질문이 새겨져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출판기획자로 ‘더불어민주당’+‘the민주’ 당명을 만들고 제안했다. 컴퓨터그래픽 및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며,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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