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과 더불어 4년 만에 찾아온 전국동시 지방선거는 여당이 압승했으나 그 과정은 고요했다.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열정은 차고 넘쳤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싱가포르에 쏠려있었다.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한반도 평화의 거센 바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비방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위정자들, 상대 후보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불태우는 극성 지지자들만의 거리축제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남쪽 사람들끼리도 저러한데, 73년 동안 갈라선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12년 봄에 출간한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는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한국전쟁 당시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사연 많은 서간문집이다. 해방 후, 남과 북이 갈라지고 민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으로 비참했으나 전선을 넘나드는 편지가 있어 따뜻했다. 남에서 북으로 간 편지, 북에서 남으로 온 편지, 모스크바에서 부친 아내의 편지, 중국으로 보내는 연인의 편지가 애틋하다. 삭막한 전쟁사와 기록들에 생명을 불어 넣어줄 인간미 넘치는 서간문이라면 보다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사랑하는 귀란 동지 앞, (중략) 귀란 동무, 내가 조국 강토에 와서 있을망정 나의 어머니를 모르거나 귀란이를 모르거나 있던 곳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요. 동무가 수고를 얼마나 많이 한다는 것을 내가 다 파악하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하루를 천추 같이 여기실 어머님을 부디부디 동무가 나를 대신하여 마음 끝 봉양하여 주옵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은, 어머님의 기념사진 동무와 같이 찍어두기를 바랍니다. 부쳐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동무 자서로서 이 편지 회답을 혁명자 입장에서 잘 써서 한 장 회답하시오. 나의 기념사진 한 장을 동무에게 보냅니다. 이것으로 철필을 놓습니다.” - 174쪽, ‘내가 떠나와 있을망정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오’에서

중국에 있는 애인 ‘장귀란’에게 보낸 ‘전상홍’의 철필 연서는 나무랄 데 없는 필체와 흐트러짐 없는 문장으로 멋스럽다. 사랑하는 귀란 동지는 자신의 노모와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는 분까지 돌보고 있으며, 그 상황에 감사하는 애틋한 감정이 녹아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열하루 전에 부친 편지의 문맥으로 보아 중국에 살던 동포 사회주의자로서 조국의 통일을 바라며 입대한 그 나름 진정성의 흔적을 남겼다. 혁명 이후에 다시 만나자는 중국말 인사 ‘거어밍 이호우 째이잰바(革命以後再見吧)’가 이채롭다.

생생한 민초들의 삶 속에 전쟁의 진실이 살아 숨 쉰다.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모를 부탁하거나, 군대 간 아들에게 결혼 날짜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날짜에 맞춰 귀가하라는 아버지, 폭격 맞아 돌아가신 부모 소식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은 물론, 돈 좀 보내달라거나 속옷, 양말, 발싸개 등을 싸들고 면회를 와달라는 부탁이 절절하다. 집안 사정과 개인의 감정, 소소한 일상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된 꾸러미가 구슬프다. 전장의 오빠 덕분에 배급을 타먹는다는 천연덕스러운 여동생의 감사 편지는 묘하게 위안이 된다.

“사랑하는 오빠에게 답서, 그동안 몸 건강하여 군대에 열중하고 있겠지? 우리 집안 인간들은 다 안녕히 있으니 그 걱정은 말고 오래비 네는 힘껏 마음껏 우리 조국에 바치어 완전 독립을 위하여 싸우라. 우리 삼 천만 동포들의 원쑤인 리승만 도당들을 물리치고 미국놈들과 싸우라. (중략) 오래비 네 덕택으로 배급을 타 먹는다. 배급은 한 달에 3번씩 탄다. 오래비 네 편지를 받아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겠다. 오래비 네 여섯 동무가 다 함께 있다는 것을 보고 더 한층 기뻐했다. 네 편지를 받아보니 노일이 형님한테도 편지를 하고 다 잘 있기를 써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일이, 일섭이는 인민군대를 안 나가구 집에서 논다.” - 126쪽, ‘오래비 네 덕택에 배급을 타 먹는다’에서

북한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이미 ‘반미’였다. 우리는 미국을 아름답게 ‘美國’이라 쓰는데, 북한 사람들은 70년 전부터 ‘米國’이라 썼다. 김일성 수령의 위대한 영도력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한반도 북반부에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끔찍한 악마 집단 미국을 쫓아낸 것이 공화국의 세뇌된 자부심이다. 21세기 들어서도 북한 주민들은 사악한 승냥이 혹은 백년숙적 미제에 맞서기 위해 핵개발을 지지했다. 그 반대급부로 발생한 경제적 고통은 주체적 조국통일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감내할만한 희생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항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년 동안 실시한 미군정 기간 동안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앞잡이 혹은 식민지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민족상잔의 씨앗이 되었다. 폭격의 원흉을 향한 ‘미 제국주의자들’이라는 적개심 가득한 표현은 그러려니 싶지만 남쪽 정부를 ‘리승만 도당’이라고 더욱 가혹하게 비난하는 것이 절망적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100여 일만에 평안남도 함종중학교 교직원 리창석이 대구에 있는 인민군 선배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형님이시여, 우리 함종중학교는 미군 항공기가 매일같이 야수적 폭격을 강행하기 때문에 학교의 개학이 연기되어 요즘에는 집에서 벼와 새를 베고 리의 사업과 전선 원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전쟁의 종국적 승리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영용무쌍하게 적과 싸워달라는 것과, 우리들의 염려 마시고 미 제국주의자들과 리승만 도당들을 계속 구축 남진하여 달라는 것을 부탁하며, 끝으로 몸 건강하여달라는 것을 축복을 빌며 나의 간단한 문안 편지를 하는 바입니다. 잘 있으면 이제부터 편지 연락을 자주 합시다.” - 69쪽, ‘형님이시여,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에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불과 5년 만에 평범한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그 감정과 고통이 그대로 녹아난 편지다. 수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한 다른 모든 사적인 편지의 문체들이 날 것 그대로 북한 사람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임을 이해하게 한다. 미군의 폭격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은 북한 주민들의 증오심은 돌이킬 수 없는 분노로 견고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팩트가 남침 때문이든 뭐든 상관없이 파멸적인 폭격을 자행한 미국과 결탁한 남쪽의 위정자들에게 대한 불편한 감정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그 반미감정의 뿌리는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을 상대해야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과 맞붙은 미군은 상대국의 식민지 사람들을 미묘한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을 맞은 식민지 남쪽 위정자들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미국에 복종하고 활용했으며 평범한 남쪽 사람들은 해방의 구세주로 미군을 받아들였다. 반면, 소련의 보호를 받아야했던 북쪽 사람들은 미국을 민족의 원수로 자연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당국의 세뇌 이전에 강제 징용된 식민지 백성들의 비참함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는 택시 안에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어머님, 저는 인정이 무엇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저는 떠난 후로부터 얼마나 여러 동지, 어머님이 보고 싶은지 정말 기가 막히고 어떻다는 것을 이 한 종이 한 펜으로서는 도모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것이 다 누구의 탓인지? 다시 한 번 리승만이라는 괴수, 정말 찢어서 가루로 만들어도 시원치 못할 우리 조선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를 증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어머님, 진리와 정의는 항상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인민들의 요망대로 그 악독한 리승만과 그 주구들이 명망하는 날은 가깝습니다. 벌써 부산도 해방되었지요.” - 289쪽, ‘알리지도 못하고 떠나온 이 언니를 용서하라’에서

평양특별시 내무성 협주단 소속 한 여성이 서울 혜화동에 사는 후배에게 보낸 편지에 첨부한 글이다. 한국전쟁 발발 3개월째 되는 시점에서 보낸 이 편지가 평범한 사람들을 이념으로 갈라서게 하는 과정을 아프게 담았다. 평양을 초토화시킨 미군의 공습과 여러 참상들을 직접 목격한 남쪽 출신 엘리트 여성의 비통한 마음은 ‘리승만과 그 주구들’을 향한 신랄한 원망을 담아 퍼붓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남북 갈등의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을 뿐이다.

전쟁터에 불려 나간 젊은이들과 그들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 속에 진정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외세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우리 민족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고, 남과 북이 조국통일이란 그릇된 명분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진정한 피해는 고스란히 민초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너도 나도 애국자가 되겠다고 입대하고 총알받이에 지나지 않는 동포들끼리 서로 죽이고, 비난한 세월들은 너무도 가슴 아프다. 이 책은 전범자나 마찬가지인 권력자들의 기록이 아닌 민초들의 격식 없는 전쟁사라 더욱 진실하고 값지다.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 그동안 어린 자식들을 시중하시기에 얼마나 큰 고생을 하십니까. 그간 어머님 위태만안하시오며, 동생 전환, 순복, 순옥, 무남, 충남, 용남, 영실이도 또 우리 처도 몸이 다 무사하며 건강한지요. 저는 남포 집에서 염려하여 주시는 덕으로 오날것(오늘까지) 건강히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중략) 제 부탁은 어머님 어린 자식들 잘 기르시기에 힘드시겠지만 공습에 몸들을 주의하시고 병에 걸리지 않게 하고 있다 평화가 오면 씩씩한 몸으로 돌아갈 때는 반가이 만나길 꼭 약속합니다. 림해 형님이나 수림한테 저는 만경대 문화군관학교로 갔다고 알리시요. 그리고 쌀 배급은 꼭 수속하세요. 리장한테도 부탁하였습니다. 증선 동무와 원섭 동무에게 소식을 전하시요.” - 61쪽 ‘자식을 서이나 전선에 보낸 우리 어머님’에서

인간미가 배제된 기록에는 생명력이 없다. 6·25가 점점 더 멀리 느껴지는 것은 흘러간 시간 탓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목소리들을 무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장군과 주요 인물들의 시선으로 정치적인 바탕 하에 전략전술과 전쟁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거대한 흐름으로 규정될 뿐이다. 우리의 주적 국가 젊은이들이 남긴 기록에 공감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은 인지상정일까? 한국전쟁을 보고하고 기록한 자료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음에도 여기 수많은 편지들만큼 몰입감을 주지 못했다.

“이곳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시우. 생각을 하여 봤자 도움이 없으니까. 아모쪼록 춘길과 춘덕을 죽이지 말고 길러주시우. 만약 먹을 것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잘 길러주시우. 이 몸은 언제나 그리운 춘길과 춘덕이를 볼까. 금일 밤에도 춘길과 춘덕이를 보았는데 눈을 뜨니 꿈이었습니다. 생각은 더 말할 수 없고. 시간은 언제든지 정직하게 살며 조국과 인민의 요구하는 데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조국의 통일이 멀지 않는 이때에 강인성에서 살아야 합니다. (중략) 금일은 별 생각 다 납니다. 그리운 춘길과 춘덕이를 언제나 보리우. 춘길과 춘덕이여, 절대로 앓지 말고 자라라. 끝으로 도시로 나가지 마시우, 절대로.” - 109쪽 ‘아이들 죽이지 말고 잘 길러주시우’에서

이흥환 선생은 미국 매릴랜드에 있는 국립문서보관소 열람실에서 한국전 당시 미군이 노획한 북한문서 더미 속 편지들을 처음 접했다. 비밀해제 된 북한문서 관련 프로젝트 선임편집위원으로 일하다가 만난 뜻밖의 행운이었다. 수십 년 동안 거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편지 728통과 엽서 344매를 전부 복사하여 분석하고 선별된 것들로 한 권의 책을 엮은 것이다. 문서를 보관해준 미군의 치밀함이 고맙지만 동기는 결코 순수하지 못하다. 단 한순간도 한국 현대사에서 눈을 뗀 적이 없는 미국의 실용주의 노선을 민족의 통합된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생각한다. ‘화(和)는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이고, 동(同)은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원리’라던 쇠귀 선생님 말씀을 생각한다. 북한이 개방되고 남과 북이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하더라도 섣불리 통일을 이야기하는 흡수통합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73년이나 헤어졌던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시간은 앞으로도 73년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호 존중과 공존을 위한 노력이 한반도의 미래를 밝혀 주리라 믿는다. 1950년에 전달되지 못한 이 편지로부터 북쪽 사람들을 차츰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는 하나다.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직장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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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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