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때 나라 전체가 짝퉁의 대명사였다. 중국산이라 하면 믿을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하던 시절에 가난한 촌놈 류창둥(刘强东)이 성실과 신의를 바탕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대놓고 짝퉁을 판매할 때 정품만을 고집했다. 모든 상품마다 세관신고서와 부가가치세 영수증을 첨부했고, 정품 최저가로 가짜들과 경쟁했다. 조금 비싸더라도 징둥(京东)을 선택하면 안전하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렸다. 회사의 재정적인 이익이 절대 고객 이익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20년의 뚝심이 승리했다.

징둥닷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주변에 거의 없었다. 스물넷 류창둥이 북경의 중관춘 전자상가에 1평 남짓 구멍가게로 시작한 ‘징둥멀티미디어’가 전진과 변신을 거듭한 과정은 마치 한 무리의 양떼를 이끄는 사자와도 같았다. 나스닥 진출로 아마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10대 인터넷 기업이고, 중국 내에서는 알리바바와 쌍벽을 이루는 동안 한국인들은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은 전자상거래 업체라고 소개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기술주도형 기업이었다. 참으로 무서운 회사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류창둥은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다. 만일 이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과연 그토록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을 해냈기 때문에 더욱 큰 가치가 있었다. 징둥은 실무형 기업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속된 말로 눈곱만큼의 이익만을 바라봤다. 100위안 가운데 20위안만 가져가고 80위안은 다른 사람이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징둥은 경쟁의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었다. 원래 폭리를 취하면 그 분야의 진입장벽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폭리를 취하는 업종에 더욱 많은 창업자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혁신을 추진하고 이윤을 낮추는 모델을 만들어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폭리를 취하는 업종은 결국에는 아예 대놓고 죽기를 기다리는 꼴과 다름없게 된다.” - 27쪽

류창둥은 최인호 장편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 ‘임상옥’을 연상시키는 사업가다. 조선 후기의 무역상으로 인삼 유통에서 북경의 카르텔에 맞서 정면 돌파로 큰돈을 벌었던 실존 인물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굶주린 동포와 수재민을 구제했으며, 장사꾼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가치를 강조한 삶을 살았던 존경받는 우리의 조상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중국인들의 처세와 모략의 자기계발서 ‘상경(商經)’을 읽고 불편했던 중국 상인에 대한 묵은 편견마저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류창둥의 목표는 ‘오로지 1등’이다. 1998년에 컴퓨터 부품 도매업으로 시작해서, 2001년 소매상으로 전환했고, 2004년 전자상거래에 뛰어들어 장기적인 소비 트렌드를 장악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전략을 단행하는데, 3C제품(컴퓨터, 휴대폰 및 소모성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변신한 것과 자립식 물류배송의 단일시스템 구축이다. 충분히 안정된 상황에서도 매번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는 류창둥의 도전에 걱정과 우려를 금할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그 선택이 옳았음을 목격했다.

아마존닷컴과 알리바바에 아직 뒤쳐져 있지만 징둥의 세월은 철저하게 계산된 승리의 역사였다. 2008년 미국계 전자상거래업체 ‘뉴에그’를 눌렀고, 2010년 아마존차이나를 물리쳤으며, 중국 최대 온라인서점인 ‘당당왕’을 기습했다. 2012년에는 중국 최대 전자제품 체인점 ‘쑤닝’과 ‘궈메이’를 상대로 가격할인전쟁을 선포했다. 2014년 미국 나스닥 상장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중국 내에서 알리바바의 유일한 경쟁상대로 마지막 결전을 앞둔 것이다. 성장세가 가장 빠른 징둥의 목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류창둥은 미래에 대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고위 경영진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아랫사람이 공감하고 자신을 믿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개인적인 이익이 우선이다. 공감은 고사하고 사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기만을 기다린다. 류창둥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소비자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다. 그는 대범하고 강단 있게 의사봉을 두드린다. 징둥의 대다수 직원들은 류창둥을 따르며 함께 일해 왔다. 그를 좋아해서든 아니면 류창둥에게 매력을 느껴서든 말이다. 류창둥은 개성이 뚜렷하며 호불호도 분명한데 그런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징둥에 들어와 지금까지 잔류해 있으며 그의 추종세력이 되었다. 그가 단호하게 의사봉을 두드릴 때면 직원들은 그를 기꺼이 따르고 믿음을 가졌다.” - 531쪽

중국 시장이 과열되어 뭐가 뭔지 분간이 힘들고, 이성을 잃을 만큼 혼란스럽던 시절도 있었다. 오히려 이성을 찾은 기업가들이 시장에서 가장 먼저 퇴출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날뛸 때 함께 이성을 잃고 큰 흐름에 운을 맡겼다. 시대에 순응한 결과 차례대로 거품이 꺼지고 모두가 이성을 차렸을 때 정리될만한 업체는 시장에서 이미 거의 다 퇴출되었다. 캐피털투데이의 쉬신 총재, 힐하우스캐피탈의 장레이 회장이 전폭적으로 자금을 지원했고, 거뜬하게 버틸 수 있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실적보다 가치관을 중시한 류창둥은 오성관리법(五星管理法)의 창시자다. 평박(拼搏, 전력을 다해 분투함), 가치, 욕망, 신의성실, 감은(感恩), 견지(堅持)를 통한 징둥인의 성공철학을 제시했다. 가치관과 실적이 모두 출중한 인재는 ‘금(gold)’, 가치관과 실적이 모두 괜찮은 인재는 ‘강철(steel)’로 분류하고, ‘20%의 금과 80%의 강철로 조직을 단결시키고 발전시킨다’는 목표로 인재를 걸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는 자기절제와 자아발전을 통해 구성원을 이끌었고, 공동의 이상에 몰두한 결과 적절한 인재평가 기준을 만들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광활한 대륙을 장악한 징둥의 핵심 경쟁력은 물류 시스템이다. 다국적 물류회사들이 굴복하고 떠난 험난한 그 땅에 정규직만 3만이 넘는 택배원에게 정성을 다하는 등 치밀하게 경쟁력을 키워왔다. 라이벌 알리바바가 업체들의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고, 택배회사와 갈등하는 반면 징둥은 모든 것을 직접 챙긴다. 사업 개시 후 10년간 줄곧 적자였지만 그것은 시장 장악을 향한 전략적 투자의 결과였고, 이제는 흑자로 돌아선지 오래다. 텐센트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모바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징둥은 금융과 플랫폼 환경도 완벽하게 구축한 상태다. 이제 1등만 하면 된다.

“도서 가격할인전쟁에서 당당왕은 노련한 적수였다. 상위 공급채널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배타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압도적으로 다양한 도서를 구비해 안정적 이윤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아마존의 강점은 가격전략이다. 누가 조금이라도 싸게 팔면 그에 따라 가격을 낮췄다. 이들의 장기적 전략 목표는 대규모 할인행사를 굳이 진행하지 않아도, 대대적인 홍보판촉 이벤트를 하지 않아도 아마존이 356일 가장 저렴한 쇼핑몰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다. 징둥은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가격결정’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파워라고 확신했다. 특히 신규 시장진입자로서 급진적인 방식을 취해야 했다. 경쟁업체가 최대 50% 할인가로 판매하면 징둥은 최대 52% 할인에 들어가면서 상대를 압박해갔다.” - 161쪽

당당왕과 아마존차이나가 양분하던 온라인 서점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징둥은 3년의 할인전쟁을 통해 마침내 아마존을 후순위로 밀어냈다. 양대 강자가 밑천을 드러내며 지쳐가는 동안, 도전자는 사용자 경험(Customer experience)에 치중했다. 도서는 표준화수준이 높은 제품이다. 책을 팔아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유입된 신규고객이 기존에 구축된 징둥의 다른 제품들을 쉽게 구입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춘 큰 그림의 승리였다. 도서 정가제에 발목 잡힌 국내의 현실과는 다른 환경이지만 전략적 관점이 국내온라인 쇼핑몰과 비슷한 양상이다.

가전제품 사업에 뛰어들 때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략을 짜야했다. 소형 가전은 단순하지만, 대형 가전의 경우 물류창고를 구축하려면 엄청난 초기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2012년 8·15 가격할인전은 경쟁자들의 협공으로 큰 위기에 처했으나, 상위 제조업체와 연계해 하나의 매장에서 여러 제조업체의 현지서비스를 지원하는 체계를 생각해냈고 장기적인 면에서 징둥은 수혜자가 되었다. 신선식품 유통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여 원산지와 농장 추적에 적용 시키는 징둥은 중국의 미래다.

“징둥에는 세 종류의 칼이 있다. 첫 번째 칼은 ‘가격’을 도려내기 위한 용도다. 고객을 위해 상품가격을 더욱 저렴하게 도려낼 것이다. 두 번째 칼은 ‘원가’를 도려내기 위한 용도다. 징둥은 전통 소매유통업체의 거추장스럽고 효율이 낮은 공급체인을 없앰으로써 원가를 낮췄다. 기업 내부의 원가관리도 매우 엄격했다. 징둥의 돈은 100분의 1단위로 세세하게 계산된다. 일례로 원래 창고작업은 그래버(데이터수집기)와 내역서를 들고 진행한다. 내역서란 주문상세정보를 종이에 인쇄한 것을 말하는데, 초창기에는 A4 사이즈에 인쇄했지만 이제는 크기를 반으로 줄여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대략 43%의 원가를 절감했다. 나중엔 아예 내역서 자체를 출력하지 않고 페이퍼리스를 실현하면서 전체 1억 위안을 절감했다. 세 번째의 칼은 ‘사상’을 겨냥한 것이다. 소비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모든 사상에 가차 없이 칼을 댈 것이다. 류창둥의 기본철학은, 회사의 비용과 이익이 아닌 ‘사용자경험’을 시작점으로 삼고, 혹시 도중에 문제가 불거지면 관리자가 내부절차를 개선하게끔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면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가상승이 문제라면, 그 고민은 관리자의 몫이자 의무라는 것이 류창둥의 기본생각이다.” - 270쪽

기업의 제도나 조직 구조는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지만 기업문화는 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2008년에서 2013년 사이 징둥의 인력은 200~300명에서 30,000여 명으로 급증했고, 지금은 15만 명이 넘는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업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경영학이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 기업이 된 것이다. 가장 동양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해서, 가장 서양적인 경영기법을 적용하며 변신에 성공한 징둥에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전설들이 차고 넘친다. 원리원칙과 실천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 류창둥의 끊임없는 변신에 답이 있다.

“앞으로 승진하려면 지금 누구를 양성하고 있는지 제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승진하고 나서 그 자리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정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없다면, 지금 하던 일을 계속 하십시오. 승진의 기회는 없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할 직원을 양성해냈을 때 여러분에게 승진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라는 것이 승진에 대한 류창둥의 명확한 원칙이다. 형편상 많이 배우지 못한 현장 직원들에게 정당한 승진 기회를 주기 위해 징둥대학에 투자했다. 성공을 향해 매진하려는데 학력이 걸림돌이 될 수 없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리석은 언론들은 류창둥이 얼마나 돈이 많으며, 19세 연하의 트로피 와이프 장저티엔(章澤天)과의 관계를 가십으로 취급했을 뿐 정작 중요한 정보들을 외면해 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냈다. 징둥의 인력이 1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매일매일 실적을 갈아치우며 2018년 1분기에도 사상 최고의 성과를 냈는데 무심하다. 성공의 99% 공로는 구성원에 있으며, 실패의 99%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뚝심의 카리스마는 공허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투박하고 거칠게 보이지만, 탄탄하고 치밀한 전략의 승리였다.

리즈강(李志剛)도 국내 독자들에겐 낯설다. 류창둥과 투자자들은 물론, 사내 엘리트 25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양한 중국인들이 징둥에 입사하여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진솔하고 박진감 넘치게 담아냈다. 이 탁월한 작가는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빅데이터로 새로운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제프 베조스와 마윈에게 턱밑까지 바짝 추격해 온 새로운 리더의 결투 신청서를 전달하는 메신저인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보다 10년이나 젊은 류창둥은 자신과 징둥의 속사정을 전부 드러내놓고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가고 있다.

북한의 시장 개방을 예측하다가 국가를 기업으로 가정할 때 징둥도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세상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아마존 고에 맞서 징둥의 ‘X무인마트’가 나왔고, 노브랜드 장안점에 시범 설치된 신세계 이마트 셀프계산대가 호평 받고 있다. 전자상거래 회사들의 기술 전쟁이 치열한데, 골목 상권을 지킨다는 명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효율의 소매 모델이 기존의 저효율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징둥닷컴은 미래를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다.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성공에 관한 중간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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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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