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토록 머뭇거려온 수많은 세월을 생각해 보라. 신들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구원의 기회를 주어왔는가? 그런데도 당신은 그 기회를 흘려버렸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당신 자신도 일부분인 우주의 본질을······. 이제 한정된 시간이 왔으며, 만일 당신이 그 한정된 시간을 이용하여 밝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당신도 흘러가버려,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것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말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무거운 메시지였다.

이 남자는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 열혈검사였다. 친동생이 음주 뺑소니 사고를 냈을 때에도, 사돈이 만취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에도 원칙대로 수사를 맡겨 구속시켰을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원칙주의자였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서도 윗선과 청와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파헤치며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항명의 결과는 좌천이었다. 이 남자의 진가를 알아본 곳은 삼성이었다. 7년의 충성과 퇴사한 3년 후까지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삼성 X파일 등 굵직한 사건의 방패로 맹활약했던 이 남자가 갑자기 삼성의 등에 칼을 꽂았다.

이 남자가 자신도 공범임을 폭로하며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은 경영권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등 크게 세 가지를 향한 특검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형식적인 처벌과 사면복권으로 이어지며 삼성의 거뜬한 승리로 끝났고, 당시 특검의 아들은 훗날 삼성 과장으로 특채되는 영광(?)을 누렸다. 우리 사회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부패했음을 증명해준 이 남자의 허무한 투쟁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베스트셀러 한 권을 남긴 채 고요해졌다. 그리고 10년,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이 여자가 한 권의 책을 냈다.

서점 구석에서 발견한 <아내의 시간>은 초록빛 표지부터 우울한 에세이였다. 저자도, 발행인도, 표지 그림도 모두 같은 사람인, 화가인 이 여자가 직접 그렸다. 책날개를 펼치자 ‘한때는 전두환 비자금을 수사한 검사의, 한때는 삼성 구조본 핵심 임원의 아내였다. 이전에는 사법고시생의 아내, 그 이전에는 꿈 많은 소녀···. 검찰과 삼성을 거치며 권력의 속성에 휘둘리고,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삼성 비자금 사건의 중심에 선 이 남자를 속절없이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두 번의 이혼을 거쳐 결별하였다.’는 담담한 소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면으로 가슴이 차였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마구 밟혔다.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와 물이 괸 창고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 남자의 마음도, 기분도 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 어쩔 것인가. 그 시동생이 나간 다음, 이 남자가 더러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단다. 그 시동생과의 악연은 평생 이어졌다. 가슴의 통증이 하루가 지나도 계속 됐다. 다음날 밤 정처 없이 집을 나섰다. 서울역으로 가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새벽 4시쯤 부산역에 내렸다. 갈 곳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해운대 행’이라고 쓰인 버스를 탔다. 해운대의 모래사장을 밟았다. (중략)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여전히 안암동으로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아 친정에 가니 부친이 그러셨다. ‘나는 너희들이 사랑하고 사는 줄 알았다.’ 그 말씀뿐이었다.” - 65쪽

1982년 크리스마스의 가출. 이 남자는 장래가 불투명한 고시생으로 자존감 없고 가난한 남편이었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제 맛이다’는 혐오스런 속담과 함께 가정폭력이 일상다반사였고, 국가와 직장과 가정이 비상식적으로 운영되던 불합리한 시절이었다. 이 여자는 그 시절의 아픈 기억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고, 심지어 친정 식구들을 향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불화가 지속된 것도 참으로 피곤한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무엇이 그토록 힘겹게 만들었을까?

때리고, 빌고, 바람피우고, 무릎 꿇는 일상의 반복 속에 1983년 이 남자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한때 살가웠을 사랑은 천천히 시들었고, 온갖 사치와 여자문제, 성병, 당뇨, 요실금까지 바깥으로 떠돌다 병들면 귀가하는 이 남자의 부끄러운 투병기가 애잔하게 흐른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살아온 이 남자의 비겁함이 피해자 입장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훗날 언론을 통해 울려 퍼지던 이 남자의 양심들이 공허하다.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더라도 수신제가(修身齊家)가 먼저다. 밖에서 사회 정의를 외치고 집에서는 폭군으로 돌변하는 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처음에는 이 여자의 투덜거림이 불편했다. 경계심을 갖고 읽어나가는 동안 정의의 투사로만 믿었던 이 남자의 치부와 단점들이 적나라하게 나열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절반쯤 읽으면서 혹시 이 남자를 음해하려고 삼성이 뒷돈을 대준 것은 아닐까도 의심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거침없이 까발려지는 거물들의 실명과 삼성과 검찰에 한 맺힌 절규가 의심을 거둬줬다. 두려움 없이 써내려간 글에는 58년 개띠 동갑내기 남편을 향한 연민도 묻어났다. 아, 이것은 유서처럼 아픈 글이었다.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글이었다.

“이 남자는 삼성에 근무했던 만 7년 동안 삼성 구조본의 엘리트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해마다 일 년이면 일이 억씩 써가며 몸치장하는 것을 배웠고, 룸살롱에 다달이 수천만 원씩 뿌리며 여러 여자 거느리는 것도 배웠고, TV에 얼굴을 비추는 애들과 비싼 섹스하는 것도 배웠고, 자기를 거두어 준 선배 뒤통수 갈기는 것도 배웠고, 남의 절친 쉽게 빼앗는 방법도 배우고, 잘라야 할 놈 뒷조사하고 트집 잡아 자르는 법도 배웠다. 내가 생각건대 2004년 삼성을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1년이면 빚을 내어서라도 3억씩 쓰는 이 남자, 여전히 20대·30대·40대를 동시에 두루두루 연애하는 이 남자가 그렇게 바쁜 와중에 삼성을 씹을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240쪽

투사는 우연히 만들어진다. 삼성의 방패였던 이 남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배인 대검 중수부장의 제안에 협조했다고 한다. ‘삼성이 먼저 자료를 내주면, 삼성은 봐주겠다’고 했다는 제안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가 독박을 쓰게 되었고, 삼성으로부터 구박과 멸시를 받으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이 한나라당에 전해진 것을 알고도 덮어버린 그 선배는 이 남자를 짓밟고 정의감에 불타는 국민 검사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웃날 정계 진출에도 성공한 사람이다.

근본도 없는 전라도 출신의 이 남자는 장차 삼성의 2인자가 될 직장상사의 면전에 대고 사태의 책임을 떠안고 감옥에 갈 것을 직언한 것도 한 몫 했다. 조직을 위해 원칙과 소신으로 자신을 대하는 부하직원을 가만 둘 바보가 삼성의 수뇌부가 어디 있을까?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충직한 사교성 없는 이 남자는 결국 가장 신뢰하는 검찰 선배와 연이은 후배의 배신으로 ‘검찰의 프락치’가 되었다. 이 남자가 누명을 쓰고 속절없이 무너지자 이 여자도 덩달아 위기의식에 빠졌다는데, 궁지에 몰린 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직장상사와의 갈등에서 위기에 빠진 이 남자를 불쌍히 여긴 X-Wife의 모성애(?)도 한몫했다. 삼성이 정계, 검찰, 언론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대대적인 로비를 했다는 폭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는데, 이 남자의 소박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 얼떨결에 大삼성과의 전쟁이 되었다는 것이다. 돈을 갈취하기 위한 폭로라는 치밀한 여론몰이가 시작되었다. 이건희·이재용 부자를 사수하는 것이 그들의 절대목표였다. 이 남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겉으로는 공격이었으나 내막은 처절한 수비에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성과의 전쟁은 여전히 가부장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이 사회에서 족쇄 하나를 차고 있는 나에게, 재벌과 재벌에 빌붙어 기생하는 권력 집단이 던진 촘촘하고 질긴 그물이었다. 그 전쟁에서 나는 병사도 아니었고, 지휘관은 더욱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조상과 종족이 전투에 패배해 로마의 노예로 끌려와 콜로세움의 어두운 지하 감방에 갇힌 스파르타쿠스에게 물 한 바가지를 떠 준 여인에 불과했고, 그 스파르타쿠스의 억울함을 적은 편지를 경기장의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로마의 황제에게는 전할 수가 없어 수문장들에게 전해 준 이름 없는 간수에 불과했다.“ - 252쪽

사회정의보다 앞선 이 남자 생존의 몸부림은 허무했다. 사건의 추이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이 여자의 색다른 시선에 고통이 배어들었다. 어쩌다 보니 권력과 자본의 최상층부와 어울릴 기회를 얻었고, 보통 사람들이 체험할 수 상상할 수 없는 별천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권력과 자본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사건이 확대되면서 소위 양심세력의 행태는 실망을 넘어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삼성도 나쁘고, 검찰도 나빴지만 믿었던 진보언론과 종교인들마저 더 깊은 상처를 남긴 것도 모자라 상처에 소금을 뿌려댔다.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은 성공의 상징이다. “얼마면 검사 사위를 볼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흔하고, 판검사와 변호사들은 선을 볼 때 제일 먼저 장인의 직업과 경제력을 살핀다. 검사들은 너도나도 스폰서가 많은 근무지를 선호한다. 전관예우는 물론 법원이 2004년부터 제도화시킨 향판도 문제다. 서울을 제외하고 원하는 곳에 눌러앉아 근무할 수 있는 제도로 그 내막을 알고 나면 모두 돈을 벌기 최적의 환경이다. 억대를 오르내리는 검사의 전별금도 별 세계고, 성접대와 성상납이 전리품처럼 일상인 그들의 세계는 과연 성공한 삶일까?

누구나 전성기가 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3살 때가 전성기였고, 신해혁명으로 퇴위하던 7살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1996년 전두환 비자금 사건 때, 이 남자는 범죄자의 카리스마를 예찬했지만 함께 일하자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며 명성을 얻었다. 수사는 성공적이었고 이 남자는 빛나는 전성기를 맞았지만 썩을 대로 썩은 검찰조직은 좌천으로 상처를 줬다. 이 남자에게 삼성이라는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은 듯싶었지만 물욕과 성욕의 노예가 되어 하염없이 추락하고 타락했다.

친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처가에서 누리며 어린애처럼 행복했던 이 남자의 한 시절을 생각한다.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많은 시련을 견디며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이 여자의 우직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잘하겠다는 각서를 수시로 썼을 만큼 악행을 되풀이했던 어리석은 이 남자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얼마나 행복했을까? 혹자는 ‘왜 지옥문을 열어젖히느냐’ 만류했다지만, 잔인한 진실의 기억은 결코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의 부처님 말씀으로 마무리하는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이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328쪽

99번 참았다가 마지막 한 번을 못 참으면 99번 참은 것이 아니라, 99번 벼른 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충 읽으면 한 맺힌 여자의 벼르고 벼른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정성껏 읽으면 한 많은 여인의 참고 참았던 슬픈 인생이 그려진다. 언론은 한 가정의 모습을 입맛대로 왜곡하여 보도했고, 선정적인 보도에 묻혀 한마디 항변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 여자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참았던 이야기를 10년 만에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이 여자의 이야기를 모두 다 신뢰하지는 않지만,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연상되는 글맛에 감정이 이입되고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소설은 허구의 인물을 통해 사실에 접근하는 이야기지만, 자서전이나 수필은 실존의 인물을 통해 미화되는 글이 넘친다. 성공한 기업인이나 엘리트의 미사여구 충만한 기록보다 소중한 것은 보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고백일 것이다. 유려한 문장과 교양과 기품이 넘치는 글이 아닌, 정제되지 않은 일상의 언어들 속에서 진실을 탐구할 뿐이다. 파란만장한 남편의 인생 뒤에 감춰진 아내의 시간이 아픔을 호소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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