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불어오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삼수갑산 오지에서 말년을 보낸 백석이다. 영하 20도는 기본이라는 삼수의 절망 속에서 김일성 시대의 유배생활을 견디며 양치기로, 농사꾼으로 늙어갔지만 결코 이상을 버리지 않았다. 글밖에 모르던 시인은 체제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던 소신을 버리고 당에 협조하겠다는 반성의 글도 써봤지만 이내 후회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고단한 삶을 수십 년이나 견디며 결코 포기하지 않은 꿈도 있었다. 눈이 푹푹 나리는 북방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그 시인을 생각한다.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홍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 137쪽, ‘북방에서’ 도입부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며 강남대로 큰 서점에 들어섰다. 모스크바로 이주하는 친구 가족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고교 진학을 앞둔 그 아들을 위해 겨울 나타샤를 담은 멋진 시집 한 권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리 생각해둔 두 권 중 하나는 품절 됐고, 나머지 한 권마저 재고가 없었다. 다른 출판사의 시집이 몇 권 있었지만 예쁘지 않은 디자인과 난해한 해석, 선물로 부적합한 파본인 까닭에 빈손으로 나왔다. 약속 시간이 임박하자 초조해졌고, 2,000원의 주차비도 아까웠지만 아무 책이나 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며, 시집은 더 읽지 않는다고 한다. 안 읽는 사람들만 문제인가?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좋다고 예쁜 책이 더 읽고 싶은 법이다. 시집은 더욱 그렇다. 만약 서점에서 소설이나 일반교양도서 50권쯤 구입한다면 1미터쯤 서가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돈이면 시집을 80권쯤 구입할 수 있지만 폭은 오히려 2/3만큼 좁아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많은 시집을 소장중인데 투자한 돈은 많고, 멋은 없으며 공간은 덜 차지하는 특성을 느낀다. 지적 허영심과 비용, 공간미가 비례할 리는 없지만 보다 예쁜 책들로 채우고 싶은 아쉬움이 있다.

시집은 예뻤으면 좋겠다. 무성의한 서체와 자간·행간, 얇고 싼 종이, 조잡한 편집으로 방치되는 것이 안타깝다. 오랜 기간 시집을 출간한 유서 깊은 출판사일수록 성의 없이 시집을 만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절판되고 품절된 시리즈도 많고 창고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듯 낡고 얼룩지고 헤진 책을 새 책이라며 배송한다. 시집이 저렴한 가격이나 양으로 평가받는 것은 반대하지만 디자인만큼은 중요한 가치였으면 좋겠다. 곽효환 시인이 엮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를 펼치며 참 예쁘다는 생각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끝에 헤매이었다.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167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부분

만주에서 방황하던 시절 가장 의지했던 정현웅 화백에게 헌사한 시가 ‘북방에서’라면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신의주에 머물 때 발표한 시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이다. 난해한 한문 제목은 ‘신의주 남쪽 유동에 사는 박시봉네 집에서’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분단 이전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규정한 서른일곱 시인이 자신의 처지를 갈매나무에 빗댄 것이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뜨겁고 호젓한 사랑과 슬픔의 청춘을 마지막으로 불사르던 시절이었다. 해방 무렵 리윤희와 결혼해서 3남 2녀를 뒀다는 시인은 한때 북한에서 번역과 창작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인생 전반을 놓고 볼 때 유랑과 유배의 시간 속에 함몰된 비운과 절망의 세월을 살았다. 서른 즈음에 발표한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걸린 좁다란 방에서 쓸쓸함을 건져 올리던 시인은 프랑시스 잠, 도연명,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호출하여 같은 해 발표된 윤동주 시인의 유작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149쪽,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동향의 사업가 방응모의 후원 속에 성장했다. 아버지 백시박 또한 국내 최초의 사진 기술을 도입하며 조선일보 사진반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고,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조선일보에서 편집기자로 활동했다. 1935년, 고향을 소재로 첫 시 ‘정주성’을 발표했다. 1936년 1월 20일,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자가본 시집 ‘사슴’을 100부를 한정판으로 발간했는데, 스무 살 청년 윤동주도 직접 필사하여 보관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처녀시 ‘정주성’은 향수와 더불어 민족의 비극을 폐허와 절망으로 은유했다. 이후의 시들은 희망과 이상향으로 나아가지만 번번이 좌절하는 나약한 슬픔이 있었다. 붕괴된 식민의 현실 속에서 ‘황일’과 같은 작품을 통해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과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들을 노래했다. 조선일보를 관두고 함흥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할 때 쓴 시 ‘절망’처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인을 통해 개인적 사랑의 좌절을 표현하는 한편 민족의 상실감을 은유했다. 무너지는 이상 세계 앞에서 절망한 무력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 13쪽, ‘정주성(定住城)’ 부분

북관의 스물여섯 영어교사가 스물두 살 기생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며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따온 ‘자야’라는 호를 그녀에게 붙여줬다. 오랑캐를 정벌하러 서역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끊는 심정을 고백한 오래된 시가 복선처럼 흐른다. 열여섯에 기생이 된 여인 김영한은 자야로 다시 태어나 운명적인 사랑을 받아들였다.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던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 또한 완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집안의 반대로 혼인을 못한 두 사람은 서울로 옮겨 뜨거운 사랑을 세월을 보낸다.

돌아온 서울에서 여성지 편집인이자 모던보이로 거리를 누비던 백석은 문인들의 공동체에 속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활동했다. 부모가 강제로 다른 여인과 결혼을 주선한 것을 견디지 못한 백석이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장춘으로 떠나던 백석이 자야에게 남긴 시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고 한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시작되면서 고향으로 간 백석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에 남은 자야는 전쟁 중에 사들인 성북동 땅에서 요정 ‘대원각’을 열어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삼 년의 뜨거운 사랑과 60년의 기다림. 자야는 해마다 백석의 생일에 금식으로 사랑과 존경을 유지했다. 법정의 ‘무소유’에 감동하여 전재산을 기증한 황혼의 자야에게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이 주어졌다. 성북동 길상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감동의 도심 사찰로 법정 스님이 입적한 곳이다. 백석이 북한 작가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해금 후에 더욱 의미 있게 평가받은 것도 자야의 헌신과 맥을 같이할 것이다. 자야는 “1000억 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말을 남겼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사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96쪽,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白石)·백설(白雪)·흰당나귀(白唐)·나타샤(白人)의 네 가지 하얀 이미지가 조화롭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았지만 실현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이상을 찾아가는 구슬픈 노래다. 간절한 소망을 담았지만 비현실적인 조합 속에 사라져 가는 아픔이 있다. 1995년 북녘의 백석이 세상을 버렸고, 1999년 남녘의 자야가 세상을 버렸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던 시어처럼 각자 여든여덟의 삶을 마치고 분단의 아픈 현실을 버리고 떠났다.

무력한 상실감에서 출발한 나라 잃은 시인의 비현실적인 이상이 친일은 물론 과격한 저항성 없이 고결한 모국어와 방언으로 채워져 잔잔하게 흐른다. 멀리 떠나는 친구의 아들에게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았던 백석을 들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품절된 낡은 시집에 빠져 밤을 새웠다. 백석 청춘의 시들과 조화롭게 배치된 아름다운 그림이 행복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윤동주고,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 백석이란 말에 백 번 동의하며 아름다운 시집의 부활을 꿈꾼다.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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