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이 되면 미국인들은 가족이 모여서 화려한 식사를 즐긴다. 이 때 대표적 요리로 칠면조와 그 속에 구운 스터핑, 그리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긴, 콩깍지 등이 등장하고 후식으로 호박 파이를 많이 먹는다. 미국은 지역 마다 요리가 다르고 이민자가 많아 집집마다 먹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이때는 자주 만나지 못한 가족들이 모여 대화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공식적인 공휴일은 추수감사절 하루이지만 학교와 회사들이 금요일에도 쉬는 경우가 많아 4일의 긴 연휴가 된다. 긴 연휴로 약 5000만 명이 각자의 고향이나 가족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한국의 추석과 설날과 같이 교통이 매우 혼잡한 기간이다.

캐나다의 경우는 추수감사절을 10월의 둘째 월요일에 지낸다. 가족이 모여 화려한 식사를 하는 것은 미국과 비슷하다. 그리고 1847년에 아프리카에 돌아간 미국 흑인이 건국한 라이베리아도 11월 첫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먹는 음식이 미국과 캐나다가 다르지만, 가족이 모여서 화려한 식사를 하는 것은 같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부터 크리스마스 준비가 시작된다. 최근에는 큰 마트들이 대대적으로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매우 혼잡하고 때로는 싸움이 발생하기도 해 ‘검은 금요일’ 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쇼핑이 확산되면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할인 세일하는 곳이 많아 ‘사이버 월요일’도 있다. 한편 소비문화 성격이 짙은 ‘검은 금요일’과 ‘사이버 월요일’에 비해서 2012년부터 여러 목적을 위한 ‘기부 화요일’이 생겨 해마다 기부금이 커지고 있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역사는 흥미롭다. 전설에 따르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현대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 신자들이 원주민에게 도움을 받아 1621년에 첫 수확을 거뒀다. 수확이 끝날 무렵 원주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에 초대해 함께 즐겼다고 한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추수감사절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에 감사를 표시하는 날로 지정했다. 그 후에 다섯 번하다가 사라졌다. 남북 전쟁 중인 1863년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다시 선언하면서 공휴일로 지정했다. 19세기 후반에 점차 정착했고 20세기에 크리스마스가 점차 상업화되면서 ‘축제 시즌(추수감사절부터 신년 초까지)’의 시작으로 의미가 굳혀졌다.

역사를 보면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사람과 원주민의 관계는 추수감사절 전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독립하기 전에 유럽 이주민과 남부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노예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원주민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독립하고 나서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원주민과 전쟁이 계속 일어났고 강제 이동도 있었다. 이 부분은 노예제도와 함께 미국의 가장 아픈 국가적 폭력의 역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추수감사절의 유래의 전설은 역사 왜곡이지만, 남북 전쟁이라는 국가적 어려움을 헤쳐가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링컨 대통령은 치열한 전쟁 상태에 국민의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서 추수감사절을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건국과 관련된 전설을 국민의 통합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흑인 인권 운동과 그 외에 다양한 분야에 일어난 시민운동 속에 원주민에 대한 폭력적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전설은 역사 속에 흘려 갔다.

추수감사절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가의 오만에 대한 고발이다. 워싱턴 대통령이 첫 번째 선언에서 했듯이 1863년에 링컨 대통령도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에 대한 감사하는 날로 지정하면서 전쟁 중에 과부와 고아 등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보호를 특별히 요청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워싱턴과 링컨의 신앙은 분명하지 않다. 워싱턴은 성공회 교회를 다녔지만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특별한 종교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링컨은 연설에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다니는 교회가 없었고 기독교를 믿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역사학자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의 신앙을 떠나서 국민이 쉽게 이해하는 서사를 사용했다고 추정이 된다.

링컨 대통령은 1864년에 두 번째와 마지막 선언에서 비슷하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전쟁 후에 평화와 화합을 요청했다. 1865년 두 번째 취임식에서도 “아무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선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노력합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도록 온 힘을 다합시다.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애씁시다”라고 했다. 링컨은 국가 위에 신이 있고 그 신은 국가를 엄숙히 보고 평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인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신의 벌을 받을 수 있고 노력하면 신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에서 왕이 사직단에 가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감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추석은 일반 가정에서 조상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신의 은혜와 보호에 감사하는 점에서 추수감사절과 비슷하다. 조선의 왕과 미국은 완전 다른 지리적 역사적 배경에 형성된 국가이지만 이런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국가에 대해 자신이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지도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역사와 의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국가가 없으므로 더 나은 국가가 되기 위해 인도적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사직단에서 제사 지냈던 세종대왕과 추수감사절을 부활시킨 링컨 대통령이 만약 만날 수 있었더라면 인도적 국가에 대한 이해는 다르겠지만,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분명히 공감했을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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