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여수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꿔 헌법화하겠다”고 했다. 내년에 있을 자치제 선거 때 지역 분권에 대한 개헌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도 했다.

필자가 2016년에 출간한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한국은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개인적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이유는 국가보다 시민에 가까운 자치제는 시민의 의사가 더 쉽게 반영되므로 더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자치제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면 작은 단위에서 부터 시민의 참여가 활발한 ‘풀뿌리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을 자치제로 분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쉽지만, 실제로 복잡한 문제이다. 어떤 권력을 어떻게 분산하는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를 분산하지 않으면 중앙 정부에 여전히 의존이 될 것이고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와 정부 기능을 분산시키면 경제력이 약한 자치제가 책임을 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앞으로 고령화가 계속 심해질 것이므로 경제력이 약한 자치제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이웃 나라인 일본의 예를 보면 일부 대도시의중심부와 특정한 산업 지구를 제외하고 많은 자치제가 인구가 감소되고 있고 경제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현재 한국 자치제의 명칭은 다양한데 도시와 도로 크게 나누어 있다. 도시는 자립형 도시인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그리고 세종시이다. 세종시는 인구수가 적지만 다른 도시들은 100만 명이 넘는다. 1990년대까지는 인구가 100만 만명이 넘으면 광역시로 승격이 되었지만, 현재는 100만이 넘는 도시가 여전히 도 안에 있고 심지어 수원은 2015년 인구 조사에서 울산을 초월했다.

도의 경우 조선 시대의 전통적 행정 구역인 충청, 전라, 그리고 경상은 남북으로 나뉘었다. 경기, 강원, 그리고 섬인 제주가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의 경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는 경기도가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은데 남북으로 나뉜 도 가운데 대부분 인구와 경제력이 감소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현재 지도의 자치제 정의가 좋은 것인가, 아니면 더 합리적 자치제 지도가 만들어져야 하는 가이다. 현재 지도는 각 지역의 역사성에 중점을 둔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을 설립할 때 조선 시대의 수도인 한양의 특수성을 존중하기 위해 서울을 ‘특별시’로 승격했다. 일제강점기는 반대로 수도의 역사성을 없애기 위해서 경성을 경도 안에 시로 지정했다.

역사성보다 경제력이 문제이다. 큰 도시를 분리시킨 후 지역의 경제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능력이 한정이 되어 있다. 부족한 부분은 중앙 정부의 지원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말뿐인 자치제 분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안정된 자치제와 갈수록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최근에 스페인에서 발생한 카탈루냐의 독립 운동의 원인 중에 하나는 그 지역이 경제력이 높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지역에 세금이 흘려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벨기에의 경제력이 높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랑드르 지역과 경제가 어려운 프랑스어 지역의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도 비슷하다.

한국은 인구와 경제력이 수도권에 집중이 되어 있어 완전한 균형을 이루기 어렵지만 가장 합리적 방법은 역사성을 무시고 전국을 인구 약 5백 만 명이 되는 10 개의 광역 지역으로 나누면 된다. 이렇게 되면 서울은 축소한 인접 경도를 몇 개 광역 지역으로 나누고 반면에 인구가 적은 지역은 통합시키면 된다.

문제는 역사성이 깊고 중요해 새로 광역 지역을 재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역사성을 존중하면서 현실성이 있는 대안은 현행 행정 구역을 유지하면서 중앙 정부의 세금 분배로 재정 어려움을 보완하는 것이다. 한국은 스페인이나 벨기에와 같은 나라와 달리 지역 간의 언어와 문화적 동질성이 높다. 그리고 유럽 연합과 같은 커다란 기구에 속하지 않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지역 간의 불편이 생겨도 극심한 갈등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1980년대에 민주화와 같이 표면적인 ‘지역감정’은 정치에 영향을 많이 끼쳤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약화했다.

중앙 정부의 권력 분산 문제는 21세기에 ‘국가’의 성격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이다. 20세기 말부터 국가의 성격이 있는 유럽연합 때문에 영국의 스코틀랜드이나 스페인의 카탈루냐가 독립하기 쉬운 풍토를 만들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투표로 물었는데 다수의 시민은 반대했지만 독립이 되면 유럽연합에 남을 수 있고 파운드화보다 강한 유로화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립은 그리 무섭지 않다. 2016년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 국민 투표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유럽연합이 그만큼 국가적 기능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영국의 부담감이 반영된 것이다.

반대로 유럽연합과 같은 커다란 국제 기구 안에 국가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국가 안에서는 자치제의 역할에 대한 의문도 있다. IT의 영향으로 많은 정부의 기능을 전자적으로 처리해 작은 단위의 자치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일본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효율성을 높이려고 많은 시와 정(町)을 통합했다.

2010년대부터 한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작은 단위의 주민 활동을 지원하는 자치제가 많아졌다. 일본도 1990년대 말에 같은 취지로 NPO(민간비영리조직)법인 제도를 도입해 시민 네 명이 법인을 설립하면 공적 자금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단위가 커지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작은 단위의 자치제가 여전한 가치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능이 잘 작동되면 시민의 감시 능력이 높아져 부패를 억제하기 쉬워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지방정부’가 무엇인지를 내년 선거 앞에 더 명확해질 것인데 완벽한 것은 없다. 자치제가 잘 기능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특수한 수도권 집중, 급속 고령화, 그리고 통일 문제를 고려하면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제도의 도입이 한국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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