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큰 명절인 한가위를 포함해서 10일간의 긴 연휴가 지나갔다. 징검다리 연휴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긴 연휴는 처음인 것 같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 한가위는 조상께 예를 드리는 차례라는 개념보다는 평소에 먹지 못하던 차례 상위에 차려진 여러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차례 상위에 차려진 여러가지 음식 중에 과자와 사탕은 차례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가장 먼저 챙기곤 했었다.

한가위의 의미
한가위는 음력 8월 15일이다. 추석(秋夕)이라고도 하는데, 한자를 보면 “가을 저녁”이란 뜻이다. 한가위에 흔하게 하는 말로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농경 사회였던 때에 일년 동안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조상님께 "조상님의 도움으로 이만큼 수확을 했습니다." 하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때, 쌀이며 과일이며 가장 풍족한 때가 바로 한가위 때이다. 한가위 같기만 하면 좋겠다는 바램이, 21세기인 지금은 이루어진 것 같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지금 이젠 옛날처럼 한가위 음식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한가위 선물
한가위에는 선물을 주고 받는 때이다. 시대별로 주고 받는 선물도 진화를 했다.
1960년대에는 백화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가위선물은 설탕, 세탁비누, 조미료 등의 생필품이었다. 1970년대에도 여전히 설탕은 인기 품목이었고, 커피나 과자 선물세트처럼 기호품이 등장했고, 식용유, 치약, 주류 선물세트도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고급 선물세트가 시작되었다. 생필품을 벗어나서 고급 선물세트가 시작되었다. 정육, 고급 과일세트, 꿀, 영지 등 건강 식품과 당시로선 고급이었던 참치캔 등이었다. 1990년대부터는 94년부터 규제가 풀린 상품권과 고급 양주, 영광 굴비, 명품 지갑 등 100만원이 넘는 고급 선물과 대형마트의 등장과 저가 선물세트도 등장하였다. 2000년대는 웰빙 열풍으로 건강식품 선물세트가 시작되었고, 술도 위스키보다 고급 와인으로 바뀌었다. 정육도 택배의 발달로 냉동이 아닌 냉장으로 바뀐 때이다.

중저가 선물세트 중에는 육가공 통조림 선물세트도 많은데,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것이 매우 특이해 보인다고 한다. 원래 육가공 통조림은 정육을 가공하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 것이라서, 외국에서는 고급과는 거리가 먼 제품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선물세트로도 인기가 있다.
김영란 법의 시작으로 5만원 미만의 선물세트가 등장했다. 과도한 선물을 하지 않는 것은 좋은데, 한우, 영광 굴비, 고급 과일 등은 한가위에 많이 팔렸는데, 이 업종에 종사하는 농민과 어민은 김영란 법의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추석이 "미풍양속"일까?
추석이 되면 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큰 명절인 설과 추석이 "미풍양속(美風良俗)"일까? 미풍양속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나 기풍" 이라고 되어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그 "미풍양속"을 즐기며 행복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 특히 며느리들은 명절을 기피한다.
문제는 과도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경우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덕담을 나누며 명절 음식과 음주로 시간을 보낸다. 며느리들은 하루 종일 전 부치고, 송편 만들고, 상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로 하루를 보낸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이나 성탄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든다. 칠면조 요리와 피자,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모두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족 누구에게 일방적인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배달된 음식으로 "모두가" 즐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우리의 명절은 다르다. 생전 얼굴 한번 만나지 못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의 조부, 증조부를 위하여 음식을 차려야 한다. 그것이 며느리의 의무이고, 조상을 위하는 것이고,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이라고 한다.
마트에 가면 손질된 나물을 팔고, 모든 제사상 음식을 만들어서 배달해 주는 곳이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정성이 없고,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꼭,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만 정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약과나 곶감은 직접 만들지 않을까? 차례상은 "직접 가꾸고 키운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께 올리는 것"인데, 왜 쌀과 과일은 직접 수확하지 않고 사오는 것일까? 원재료는 구입해도 괜찮지만, 반제품이나 완제품을 사면 정성이 없어서 안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물하나 만드는데 손질하고, 데치고, 조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해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제사상 차리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안되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려운 차례상, 합리적인 진화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 고비합설(考妣合設), 시접거중(匙楪居中), 반서갱동(飯西羹東), 적접거중(炙楪居中), 배복방향(背腹方向), 서포동혜(西脯東醯), 동조서율(東棗西栗), 면서병동(麪西餠東), 어동육서(魚東肉西), 동두서미(東頭西尾), 좌포우혜(左鮑右醯), 숙서생동(熟西生東).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에 대한 용어들이다. 한자를 보면 무슨 의미인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주로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을 하는데, 전통적인 남향집에서는 그나마 가능하지만, 동남향 집의 경우 차례상을 대각선으로 놓아야 가능한 것들도 있다. 이러한 관습도 지방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르다. 결국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관습보다는 차례를 지내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우리나라는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차례를 지낸 후 제수(祭需)와 제주(祭酒)를 먹는다. 이를 음복(飮福)이라고 하는데 조상이 드신 음식을 자손들이 함께 먹으면서 잘 살게 해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최소화하여 차리고, 차례를 지낸 음식은 귀신이 손댄 음식이기 때문에 사람이 먹으면 탈이 난다고 모두 버린다고 한다. 이렇듯 나라마다 차례 상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부여한다.
다행히 명절을 보내는 방법은 합리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명절 때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리고, 모두 함께 요리를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있다. 차례상도 떡과 제철과일, 고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인 피자, 과자 등으로 간단하게 차리는 집도 생겼다. 장손이 차례를 지내는 관습도 바뀌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제 자식은 딸이건 아들이건 한명인 경우가 많은데, 딸도 부모의 제사를 모셔야 하고, 아들도 제사 음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진정한 명절이 되려면…
설과 추석이 진정한 모든 사람의 명절이고 "미풍양속"이 되려면,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부터 변해야한다. 잘 먹지 않는 차례 음식은 없애고, 평소에 조상이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하고,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반제품이나 완제품을 사서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고 본다.
일년에 몇 번 밖에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없는데, 음식 준비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다들 모여서,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명절이 되어야한다.
내가 죽은 후 내 자식들이, 며느리들이 직접 차리지 않고 사온 음식으로, 간소화하여 내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난 내 후손을 원망하거나 나쁘게 되길 바랄 생각은 전혀 없다. 내 제사 때 내 후손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나는 후손이 잘되길 바랄 것이다. 내 조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설사 내가 조상의 차례 조차 지내지 않는다고 하여도 계속해서 잘되기를 바래 주실 것이다. 시대가 변하였으니 좀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한상준 han.sangjoon@gmail.com 포토스탁 회사 이미지클릭 이사. 한글과컴퓨터 등 IT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고 분석하는 얼리아답터 활동을 하고 있다. IT 분야 뿐 아니라 아마추어 마라토너, 요리, 커피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관심 분야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정리하여 글로 남기는 것을 즐기고있다. 현재 논현동에서 커피 전문점 카페드양도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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