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 중에 아직도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 ‘무끼’라는 말이 있는데 예를 들어 “저 친구는 영업 무끼야” 라고 하면 영업에 적합한 체질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일본어 'むき(무키)'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방향, 방면' 또는 '적합성'이란 뜻으로 어떤 직종에 체질적으로 맞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쓴다. 통상 ‘영업 무끼’ 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사교적이고 적극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쉽게 사람을 사귀고 너스레도 잘 떠는 편이며, 저돌적이고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런데 주위를 잘 관찰해 보면,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영업 실적이 좋은 사람들이 꼭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말주변도 별로 없고, 수줍고 조용해서 “저 사람이 고객들을 만나서 제대로 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중에 탁월한 영업 성과를 내는 이들이 꽤 많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영업을 잘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일즈의 비결을 다룬 책들이 수없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저자들은 여러 다양한 스킬에 대해 언급한다. 보험왕, 자동차 판매왕들의 부지런함, 센스, 끈질김과 같은 자질을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설득하고 협상하는 기술, 대화의 기술 등을 얘기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판매하는 영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세일즈의 비결에 대해 여러 가지 해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오래 전 한 기업의 해외 법인에서 근무할 때 고객에게서 들었던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당시 우리는 진입 시기가 늦어 경쟁사보다 크게 열세인지라, 만회를 위해 유능한 영업 담당 현지 책임자 후보를 물색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 나라 최고의 유통업체 구매 총책을 만나 물었다. “경쟁업체 A사의 영업 책임자 ‘미스터 X’에 대한 고객들의 평판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 구매 총책은 망설이지도 않고 즉시 대답해 주었다. “미스터 X는 매우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와 거래를 하면 낭패를 볼 일이 없다. 그는 약속을 하면 잘 지킨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불가피하게 납기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는 반드시 사전에 알려주어서 우리가 나름의 방법을 찾아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구매 총책의 대답은 일견 평범하다고 볼 수 있지만 내게 본질적인 내용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그 때 이후, 나는 영업 성과가 좋은 사람은 달변이나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고 고객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영업 무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왜 영업 실적이 좋은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일즈의 비결은 고객과의 만남이 1회성인지 혹은 지속적인지, 고객이 개인인지 혹은 기업인지, 구매 결정권자가 샐러리맨인지 혹은 오너인지 등 상황에 따라서 약간씩 다를 수가 있다. 여기서는 B2B 거래를 전제로 살펴 보자. 훌륭한 세일즈맨은 고객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정보에 목마르다. 세일즈맨은 상품과 시장 그리고 업계의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은 이런 세일즈맨에게 믿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 만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또 고객의 문의나 요청에 최대한 빠르게 대응하여 고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Responsiveness(민감성)가 중요하다. 그러나 고객의 신뢰를 얻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만약 차질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지체하지 않고 알려서 그들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고객과 한 약속을 못 지킨다는 것은 아주 난감한 일이며, 차질이 생긴다고 고객에게 알려주는 것이 말같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고객은 불같이 화를 내고 펄펄 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래 중단의 위협이나 인격적인 모독을 해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쁜 소식일수록 문제를 피하지 않고 즉시 알려 주어야 더 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품질 문제와 같이 미묘한 이슈일수록 숨기지 말고 최대한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처 방안을 찾게 된다. 무슨 일이든 어려울수록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정공법으로 돌파하면 길이 있는 것 같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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